[생각뉴스] '러브호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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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랑에 빠진 이들은

둘만의 집이 필요하지요.

'지을 수 없다면' 잠깐 깃들

방이라도 빌려야 하고요.

집없는 그들의 임시 거소는

고즈넉해도 좋을 테지만,

세상이 그리 만만한가요?

눈감으면 코 베어 가는 세태,

사랑도 빨라야 합니다.

하여 '그들만의 방'이

러브호텔로 불리게 됐죠.

은밀해야 할 사랑이

현란한 불빛으로

사람들 눈을 어지럽게 한

즈음부터였을 거예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반사회적이고 비교육적인

불온한 용어로 변질된 것도

어쩌면 스스로 통제가 안 된

그때부터였을 거고요.

'사랑'이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문제가 된 것도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네요.

해도 달도 별도 아니면서

눈과 마음을 괴롭히는

불빛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 현란한 불빛과 그

그림자 때문에 괴로운

네온사인을 이제야

제한하겠다고 나선

무리가 있군요.

내년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시 미관을 해치는

러브호텔 네온사인 조명을

정비하기로 했다고요.

러브호텔 조명이 타인의

'미관'을 해칠 정도라면

제한하는 게 당연하지요.

그런데 '정비의 필요성'조차

아직 못 깨달은 다른 지자체

실무자들은 언제쯤 돼야

'도시의 미관'을 제대로

깨달을까요? 온 나라, 온

도시가 촌스러운 광고판에

완전히 점령당한 뒤에?

*부산시는 내년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도시 미관을 해치고 내외국 관광객들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준다는 이유로 강렬하고 현란한 러브호텔의 네온사인 조명을 대대적으로 정비하기로 했다.

송은일<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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