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流열풍은 겉핥기 지식인이 교류 주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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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과 중국 간 문화교류를 대중문화인들에게만 맡겨놓지 말고 이젠 지식인들이 나서서 보다 심도있게 전개해야 합니다."
중국 현대문학 비평계의 대표적 학자인 훙쯔청(洪子誠·64)베이징대 교수의 말이다. 그는 최근 한국·중국·일본의 학자·예술가 60여명이 돛을 올린 '제1회 동아시아 문화공동체 포럼'(이하 포럼)의 중국측 좌장격으로 참여했다.
몸이 불편해 인터뷰를 고사하는 洪교수를 어렵게 따로 만나 현재 한·중·일 문화교류의 흐름과 전망에 대해 들었다. "최근 중국에 불고 있는 연예인 중심의 한류(韓流)열풍은 한국 문화의 진정한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는 洪교수는 한·중 문화교류에 대한 지식인의 책임의식을 강조하면서 "이번에 출범한 포럼도 그런 노력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1980년대에 중국에 미국·유럽 등 서구와 일본의 대중문화가 집중 소개되기 시작했어요. 그런 흐름에 이어 최근엔 한국의 대중가요와 TV드라마 등이 인기를 끌고 있지요. 드라마와 가요도 나름의 가치를 지닌 예술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주고 있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문화가 무엇이냐고 묻자 洪교수는 구체적으로 거명하는 대신 "한국과 중국의 지식인들이 나서서 한국의 현실과 문화의 특징을 중국에 깊이 있게 소개해야 할 것"이라고만 거듭 강조했다.
洪교수는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이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점차 배타적 규범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끊임없는 자각적 반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학자다. 특히 개혁·개방이 본격화된 후 중국에서 개인의 일상과 감성을 노출시키는 예술경향에도 열린 자세를 보인다는 점에서 洪교수는 신좌파(新左派)내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한다. 洪교수는 '자각적 반성'이야말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상생을 위한 연대에도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경우 20세기 침략사에 대해 주류 지식인과 정부가 책임있는 언행을 보여야 한다"고 지적한 洪교수는 마찬가지로 중국도 "자기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중국에서 최근 많이 거론되는 민족주의만 해도 강조에 앞서 곰곰이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민족주의는 국내적으론 현실의 많은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하는 수단일 수도 있고, 대외적으론 중화(中華)중심주의로 나아갈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洪교수는 이번 포럼 같은 3국 간의 민간 교류가 서로가 서로를 비춰 주는 거울 역할을 하면서 궁극적으로 스스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동아시아 문화의 전통과 현실적인 의의를 3국이 함께 모색하기 위해선 "한·중·일 간의 차이와 모순을 발견하는 것이 공통점을 찾는 것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이라고 지적한 洪교수는 "타인의 언어 속으로 들어가 자기사고의 한계를 반사(反思)해 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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