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10명 중 4명은 한옥에 살고 싶어 한다. 2008년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전국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게다가 요즘 ‘개인의 취향’ ‘신데렐라 언니’ 등 TV 드라마에 나온 한옥은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현대 도시인의 한옥에 대한 꿈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한옥에 사는 맛과 멋은 어떤 것일까. 4년 전부터 서울 계동 북촌마을의 한옥에서 살고 있는 한귀남(66)씨에게서 서울의 한옥에 산다는 것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2년 전까지 서울 피맛골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주점 ‘시인통신’을 운영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귀남씨가 마당의 화분들에 물을 뿌리고 있다. 한씨는 “한송이 시를 피우기 위해 꽃을 심는다”고 써 달라고 했다. 그는 느긋한 오후면 마당의 나무 데크 위에 상을 펴고 시를 짓기도 한다.
낭만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집을 보수하는 데 8000만원이 들었다. 서울시에서 낡은 한옥을 보수하는 데 5000만원을 지원해줬고, 여기에 자비를 보탰다. 시 지원금 중 2000만원은 5년에 걸쳐 갚아나가야 한다. 한옥을 고치려면 한옥 전문 건축업체나 무형문화재 대목들에게 맡긴다. 하지만 한씨는 그런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이 동네엔 낡은 한옥 수리를 맡아 해 주는 목수가 있고, 동네사람들은 한옥 전문가가 아니라 알음알음으로 이 동네를 잘 아는 목수들을 동원해 집을 고친다.
3개월 동안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썩은 기둥을 잘라내고 적송을 써 다시 세웠다. 담과 장독대를 허물고 새로 대문을 텄다. 2m 길이에 50㎝ 폭에 불과하지만 행랑채 앞에 앉는 마루도 만들었다.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고치고, 샤워시설을 해 넣고, 마루 아래 난방 설비를 했다. 창호로 돼 있던 문 대신 유리를 해 넣었다. 창호로 하면 겨울철에 닫고만 있어야 해 답답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한씨는 “싹 고치고 나니 한옥은 나만을 위한 ‘궁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집은 늘 사람 손길을 요구한다
대대적인 공사 한 번으로 집안에 손댈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눈·비가 많이 온 날은 기와가 깨져 그 틈으로 흙이 새는 일도 생긴다. 그러면 기와를 갈아줘야 한다. 안채에서 마당으로 향하는 여닫이 문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가 휘어져 홈과 아귀가 잘 맞지 않았다. 한씨는 “여닫이 문을 서로 바꿔 끼워가면서 적응해 나가지만 혼자 하기 힘든 부분들은 사람을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칠은 3년에 한 번 정도 해주면 돼 큰 불편은 없다”고 덧붙였다.
리모델링된 한옥이지만 겨울 삭풍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문이 이중으로 되지 않아 틈 사이로 황소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래서 한씨는 한겨울에는 두툼한 담요 같은 천을 이용해 문 앞에 커튼을 친다. 그는 “한옥 중에는 이중문을 하거나 새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초여름의 한옥은 하나의 풍경이다
옹기 항아리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낭랑했다.
한씨는 끝으로 걱정거리 하나를 털어 놨다. “한옥은 화재보험 가입이 안 돼요.”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옥마을의 특성상 화재가 나면 여러 집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짙다 보니 그런 것 같단다. 그는 “이 부분만큼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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