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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한옥의 행복, 바로 이맘때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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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한국 사람 10명 중 4명은 한옥에 살고 싶어 한다. 2008년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전국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게다가 요즘 ‘개인의 취향’ ‘신데렐라 언니’ 등 TV 드라마에 나온 한옥은 그야말로 매혹적이었다. 현대 도시인의 한옥에 대한 꿈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진짜 한옥에 사는 맛과 멋은 어떤 것일까. 4년 전부터 서울 계동 북촌마을의 한옥에서 살고 있는 한귀남(66)씨에게서 서울의 한옥에 산다는 것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2년 전까지 서울 피맛골에서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주점 ‘시인통신’을 운영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한귀남씨가 마당의 화분들에 물을 뿌리고 있다. 한씨는 “한송이 시를 피우기 위해 꽃을 심는다”고 써 달라고 했다. 그는 느긋한 오후면 마당의 나무 데크 위에 상을 펴고 시를 짓기도 한다.

한씨의 집은 서울의 대표적인 한옥촌인 서울 계동 북촌마을에 있다. 집은 69㎡(21평), 방 두 개에 부엌과 화장실이 전부인 좁은 집이다. 드라마에서 보는 널찍한 실내 구조는, 사실 서울의 한옥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의 한옥은 대부분 좁다. 한씨가 이 집을 산 것은 6년 전. 어렸을 적 살았던 한옥을 잊지 못해 한번 살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널찍한 대청에 멋들어진 기와는 없었다. 1930년대 지어진 집은 낡고 우중충했다. 나무 기둥은 헐었고, 기와는 얼기설기 깨져 있었다. 좁은 마당을 차지한 장독대는 공간만 잡아먹었다. 집을 다시 뜯어고치지 않고는 살기 힘든 형편이었다.

낭만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집을 보수하는 데 8000만원이 들었다. 서울시에서 낡은 한옥을 보수하는 데 5000만원을 지원해줬고, 여기에 자비를 보탰다. 시 지원금 중 2000만원은 5년에 걸쳐 갚아나가야 한다. 한옥을 고치려면 한옥 전문 건축업체나 무형문화재 대목들에게 맡긴다. 하지만 한씨는 그런 건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했다. 워낙 비싸기 때문이다. 이 동네엔 낡은 한옥 수리를 맡아 해 주는 목수가 있고, 동네사람들은 한옥 전문가가 아니라 알음알음으로 이 동네를 잘 아는 목수들을 동원해 집을 고친다.

3개월 동안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썩은 기둥을 잘라내고 적송을 써 다시 세웠다. 담과 장독대를 허물고 새로 대문을 텄다. 2m 길이에 50㎝ 폭에 불과하지만 행랑채 앞에 앉는 마루도 만들었다. 화장실도 수세식으로 고치고, 샤워시설을 해 넣고, 마루 아래 난방 설비를 했다. 창호로 돼 있던 문 대신 유리를 해 넣었다. 창호로 하면 겨울철에 닫고만 있어야 해 답답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었다. 한씨는 “싹 고치고 나니 한옥은 나만을 위한 ‘궁전’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집은 늘 사람 손길을 요구한다

대대적인 공사 한 번으로 집안에 손댈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거나 눈·비가 많이 온 날은 기와가 깨져 그 틈으로 흙이 새는 일도 생긴다. 그러면 기와를 갈아줘야 한다. 안채에서 마당으로 향하는 여닫이 문도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가 휘어져 홈과 아귀가 잘 맞지 않았다. 한씨는 “여닫이 문을 서로 바꿔 끼워가면서 적응해 나가지만 혼자 하기 힘든 부분들은 사람을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칠은 3년에 한 번 정도 해주면 돼 큰 불편은 없다”고 덧붙였다.

리모델링된 한옥이지만 겨울 삭풍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문이 이중으로 되지 않아 틈 사이로 황소바람이 불기도 했다. 그래서 한씨는 한겨울에는 두툼한 담요 같은 천을 이용해 문 앞에 커튼을 친다. 그는 “한옥 중에는 이중문을 하거나 새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초여름의 한옥은 하나의 풍경이다

옹기 항아리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낭랑했다.

한옥이 가장 좋은 때는 바로 이맘때라고 했다. 돌계단에는 이끼가 피고, 담에는 덩굴이 기어올랐다. 장독대를 헐어서 확보한 마당은 꽤나 탁 트인 느낌이다. 한씨는 “한옥은 도심 한복판에서도 어느 산줄기에 들어와 사는 것 같은 고즈넉함과 호젓함을 느낄 수 있는 게 좋다”고 말했다. 좁은 한옥이었지만 마당 그 자체는 훤했다. 담을 넘어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옹기 항아리에 떨어지는 수돗물 소리가 마당을 채웠다. 그는 이 집에 앉아서 시도 쓰고 글도 쓴다고 했다. 그는 “한참 추울 때 한두 달만 견디면 너무 행복한 곳”이라고 했다.

한씨는 끝으로 걱정거리 하나를 털어 놨다. “한옥은 화재보험 가입이 안 돼요.” 다닥다닥 붙어있는 한옥마을의 특성상 화재가 나면 여러 집으로 옮겨붙을 가능성이 짙다 보니 그런 것 같단다. 그는 “이 부분만큼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TIP 전국 200여 곳 ‘한옥 홈스테이’ 정보, 여기서 찾아보세요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홈스테이 한옥 정보를 알고 싶으면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한옥에서의 하루’ 홈페이지(korean.visitkorea.or.kr/hanok)에 들어가보면 된다. 한옥숙박정보 메뉴에서 전국에 있는 200여 개의 한옥 숙박시설을 모두 볼 수 있다. 지역별 정보검색뿐만 아니라 종택·고택·민박·호텔 등 한옥 시설의 유형별 검색도 가능하다. 한옥별로 위치·연락처와 찾아가는 길 등 정보도 자세히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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