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쌓는 중소기업] 엘리베이터 상품 제조 두원기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지난 24일 오후 인천의 엘리베이터 부품제조 소기업인 두원기업 회의실. 배복순(57.여) 대표와 여섯명의 필리핀 산업연수생이 모였다.

테이블엔 바나나.귤과 스물아홉개의 초가 꽂힌, 하얀 생크림 케이크가 놓여 있다. 이날은 에드몬의 생일. 배대표가 마련해 준 조촐한 생일상이다.

에드몬이 뭔가 아쉬운 듯 서투른 한국어로 말을 꺼낸다.

"맥주는 없어요?"

배대표가 "일하는 시간인데 맥주는 안돼"라고 딱잡아 거절하자 옆에 있던 아리엘(35)이 냉큼 한마디를 던진다."그럼 소주요."

웃음이 터지는 가운데 작업반장 채수근(57)씨가 들어서며 외친다.

"페르디, 인제 내 모자 내놔."

그러자 페르디(30)가 계면쩍게 웃으며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내민다. 모자 한번 써보겠다고 하고는 은근히 자기 것으로 '접수'했다가 반납하는 것.

두원기업의 필리핀 연수생들은 이렇게 한국인 근로자들과 가족처럼 지낸다. 실제 이들은 배대표를 '마마(엄마)'라 부른다. 한국 근로자들도 "예절이 발라 인사도 잘하고, 일도 열심히 한다"며 필리핀 연수생들을 동생 대하듯 한다. 간부들이 필리핀 연수생에게 가끔 용돈을 쥐여주기도 한다.

매질등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이나, 연수생이 몰래 도망쳐 불법체류자가 되는 것 등은 이들에게 남의 나라 일이다.

두원기업은 전체 직원 20명 중 7명이 필리핀 연수생. 작은 기업이지만 연수생을 위한 기숙사도 있다. 급여 외에 1인당 월 15만원의 음식비를 별도 지급한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회사에서 비행기표를 사 주고, 선물도 마련한다. 배대표는 3월 초 귀향하는 델핀(37)에게 부인용 목걸이를 선물할 생각이다. 델핀에게서 "귀국하는 날이 아내의 생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란다.

1년이면 2주일 정도 고국에 휴가도 갔다 온다. 현재 한명이 휴가 중이다. 라만(27)도 "아내가 보고 싶다"며 배대표를 졸라 2월 초에 휴가가도록 허락받았다.

배대표는 "착하고 부지런한 일꾼들을 그만큼 대우해 주는 것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름대로 연수생을 가려 채용한다. 가끔 게으름 피우며 '물을 흐리는'연수생도 오는데 지켜보다 정 안되겠으면 연수생 관리 업체에 연락해 도로 데려가달라고 요청한다는 것이다.

배대표는 "지난해 연수를 마치고 돌아간 '준'이라는 녀석이 얼마 전 전화해'마마'라고 불렀을 때 정말 가슴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두원기업 사람들을 필리핀 연수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고국행을 앞둔 델핀은 이렇게 말했다. "한국에 2년 있었더니 가족과 고향 생각이 간절해요. 하지만 돌아가면 여기 분들과 같이 소풍다니던 시절이 그리울 것 같아요."

인천=권혁주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