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왜 '절대 정직' 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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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의 초우량 기업들을 방문해 보면 상당수의 기업이 '타협할 수 없는 정직' 또는 '절대정직'을 사시(社是)내지는 기업이념으로 삼고 있음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이 기업들이 홍보용으로 그렇게 한다고 생각했으나 휼렛패커드나 존슨앤드존슨 같은 기업은 정말로 그러한 사시를 실행하려고 노력한다.

*** 기업 최고 경쟁력과 연결

그래서 사업을 하다 보면 뇌물을 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텐데, 주문을 놓치더라도 정직이라는 원칙을 지키느냐고 질문을 했다.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며, 이들 기업이 정직을 중요시하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답변했다.

하나는 뇌물 등의 외부 부패를 용인하면 내부의 부패도 다스리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끔 뇌물의 배달사고가 난다는 보도를 보게 되는데, 뇌물을 주면서 영수증을 받을 수 없으니까 정말로 전달이 됐는지를 회사 입장에서 확인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한 임원의 말을 빌리면 "뇌물을 주지 않더라도 사업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경쟁력을 갖도록 회사 전체가 노력하게 만들기 위하여"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정직은 최우량 기업의 조건이다. 요컨대 정직은 최고의 경쟁력과 연결되고 부패는 기업내부 규율의 와해로 직결된다고 하겠다.

요즈음에 무슨 무슨 '게이트' 하면서 부패 스캔들이 줄지어 터지고 있다. 만약에 보도처럼 부패와 부정이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면 이는 국가시스템 전체의 효율을 떨어뜨려 또 다른 위기로 연결될 수도 있다. 돌이켜 보건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는 많이 진보해 왔다.

1960년대에는 굶는 사람을 없애는 것이 급선무였고, 70년대에는 국가권력에 의해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었다.

80년대에는 서서히 개방을 시작하였고, 90년대에는 민주주의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40년의 진보 덕분에 이제 한국은 그런대로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나라가 됐다. 이러한 국가 건설의 다음 단계는 '깨끗하고 투명한'나라의 건설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중국경제가 더 부상하면 한국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는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리고 있다. 필자의 소견으로 한국이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정직과 투명성'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부정은 결국 비효율로 연결된다.

한국이 좀더 정직하고 투명한 사회가 된다면 기업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높은 대우를 받게 될 것이며, 이는 바로 소득의 상승과 연결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제도적인 변화 없이 의식전환만 가지고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적어도 세가지의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정치비용을 줄이는 일이다. 국회의원 한명의 선거 및 4년 임기 유지비는 수십억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국회 전체로는 4년간 조(兆)대의 비용이 들 것으로 추정되며, 여기에 대통령과 지자체장 선거 및 유지비까지 합치면 그 비용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선거 및 정치비용을 앞으로 5년 내에 지금의 절반 정도로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는 정부의 시장개입을 줄이는 일이다. 지금의 벤처기업과 관련된 비리의 원천은 '벤처기업지정 제도' 때문이다. 가만히 두어야 할 벤처기업까지도 정부가 나서서 관리하려는 마인드가 문제인 것이다. 여러 연구를 보면 경제자유와 부패는 반비례한다.

*** 경제자유·부패는 반비례

경제자유가 없는 나라일수록 부패지수가 높게 나타난다. 정부의 시장개입을 줄이면 부패도 축소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처벌받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신호등을 안 지키고 속도를 위반하면 기록이 되고 벌금이 나오게끔 전자장치 등을 동원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탈세를 하거나 법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불이익이 따르도록 시스템을 짜야 한다. 제도를 고치지 않고 구호만 가지고 깨끗한 나라를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21세기의 첫 10년 동안에 우리나라가 부패를 반으로만 줄일 수 있다면 우리는 정말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구현 연세대 교수 경영학

▶필자 약력=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미시간대 경영학박사,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장, 경영대학원장, 한국국제경영학회회장 역임, 현재 한국비영리학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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