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요즘 지하철표 사나요" 자동발매기 애물단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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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첨단기술에 밀리고,그렇다고 당장 없앨 수도 없고…’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설치한 고가(高價) 공공기기들이 첨단의 새 기술에 뒷전으로 밀려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이때문에 기기 도입과 운영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던 공기업들이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지하철을 운영하고 있는 지하철공사와 도시철도공사측은 요즘 승차권 자동판매기 때문에 '준(準) 비상' 사태다.

1~8호선 2백60개 역에 설치된 자동발매기는 모두 2천3백51대. 1986년부터 전량을 프랑스에서 수입한 전구간 승차권 판매 가능 발매기(대당 2천9백여만원) 4백92대 등 전체 자동발매기의 기계값이 3백93억원에 이르고 이들 기계를 관리하는 직원들도 3백여명이다.

하지만 99년 칩이 내장돼 교통비 후불 결제가 가능한 신용카드에 이어 2000년 교통카드가 등장하면서 자동발매기를 통한 승차권 판매는 99년 30만장, 2000년 29만장, 지난해 24만장으로 계속 줄고 있다.

공사측에 따르면 카드를 사용하는 승객이 전체 이용객의 50%에 이르고, 나머지 승객의 70%도 발매창구를 이용해 자동발매기를 통한 발권율은 전체의 15% 정도에 불과하다는 것.

이처럼 자동발매기가 판매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공사들은 지하철 이용객들을 상대로 발매기를 통한 표 판매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우선 올 들어 80여대의 자동발매기를 이용객들의 동선(動線)에 따라 재배치했다. 또 지난해 말부터 모든 지하철역에 '자동발매기도 표를 팔고 싶다'는 내용의 스티커와 현수막을 설치하고, 전동차에서 "발매기를 이용해 달라"는 방송을 하는 등 홍보에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하철공사 직원 金모씨는 "첨단기술을 선호하고 유행을 쉽게 받아들이는 우리 국민의 특성상 판매가 쉽게 호전될 것 같진 않다"며 "그렇다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발매기를 방치할 수도 없어 난감한 상태"라고 말했다.

휴대전화 사용이 일반화하면서 이용자 수가 계속 줄고 있는 공중전화도 비슷한 경우. 98년 이후 단말기값 인하로 휴대전화 보급률이 치솟으면서 공중전화 수입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 공중전화 50여만대에서 나온 수입금은 99년 6천1백억원에서 2000년 4천5백억원,지난해 3천5백억원 정도로 급감했다.

이 때문에 한국통신은 우선 사용연한인 6년을 넘긴 전화기를 시작으로 공중전화 시설을 점차 줄여간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대당 50만~1백만원을 들인 초기 투자비용을 생각하면 아깝지만 공중전화 관리에만 9백여명의 직원이 동원되는 등 부담이 커 어쩔 수 없다고 한국통신측은 말한다.

남궁욱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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