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투표로 만들어가는 역사의 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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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늘 유권자는 1인당 9표를 찍는다. 붓두껍으로 찍는 표는 투표지에 적혀 있는 8표다. 나머지 한 표는 투표소에 출석함으로써 민주주의 생활기록부에 찍는 출석표다. 민주주의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인류가 만든 가장 슬기로운 제도다. 민주주의 3대 정신(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중에서 ‘국민에 의한’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직접 민주주의 방식이 선거요 투표다. 이 제도를 위한 선조들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 나라가 가진 현명한 제도를 발전시키기 위해, 이런 제도를 상상도 못하는 ‘어뢰 발사 집단’에게 민주제도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관위의 표어처럼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유권자들은 민주주의의 출석표를 던져야 한다.

개인생활이 바빠지고,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가 늘면서 한국의 투표율은 점차 떨어져왔다. 지방선거만 해도 제도가 처음 실시된 1995년 68.4%를 기록했다가 점차 낮아져 2002년(3회)엔 48.9%까지 떨어졌다. 2006년엔 51.6%로 겨우 절반을 넘었다. 투표율 하락은 국회의원 선거도 마찬가지여서 2004년엔 60.6%였다가 2008년엔 46%까지 떨어져 전국 단위 선거의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낮은 투표율은 젊은 세대에서 더욱 두드러져 2006년 지방선거의 경우 50대 68.2%, 60대 이상 70.9%에 비해 20대 33.8%, 30대 41.4%였다. 20~30대는 두 명 중 한 명도 투표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한국 정치의 후진적 행태를 보면 유권자의 정치 무관심에 이해할 구석도 많다. 찍어주면 말이 달라지고, 민선 4기(2006년) 기초단체장의 거의 절반이 기소되고, 주민세금을 호화청사 같은 데에 펑펑 쓰니 지방자치에 대한 불신이 늘어난다. “내 한 표로 뭐가 달라질까”라는 회의(懷疑)가 늘 법도 하다.

그러나 한 톨 한 톨이 모여 밥 한 그릇이 되듯 한 표 한 표가 모여 사회를 바꾸고 역사를 진전시킨다. 5공 독재를 흔들었던 1985년 총선, 60년대 이후 처음으로 여소야대를 만들었던 88년 총선, 집권당의 오만에 일침(一鍼)을 가했던 92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이 모두가 유권자의 투표 참여로 이뤄진 역사의 변화였다.

이번 선거에서도 유권자가 투표로 말을 해야 할 문제는 많다. 천안함에 대해 누가 옳은 얘기를 하는지, 세종시나 4대 강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상급식은 얼마나 해야 하는지, 노무현 복고풍은 필요한 것인지, 정말 이명박 정권이 독재인지, 세금을 자기 돈처럼 귀중하게 여기며 내가 살고 있는 고장을 알뜰살뜰 잘살게 해줄 일꾼이 누구인지, 전교조와 왜곡된 교육으로부터 상처 받은 학교와 학생을 보듬어줄 교육감과 교육의원은 누구인지, 많은 사안이 유권자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 미처 읽지 못했으면 오늘 아침이라도 선거공보를 읽으면서 후보자에 대해 공부를 하자. 그리고 투표장에 가자. 모든 게 민주주의를 위한 수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