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求同存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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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1955년 4월 18일 인도네시아 반둥에서 ‘아시아·아프리카 회의’가 열렸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 신생 독립국의 정치 세력화를 위한 자리였다. 저우언라이(周恩來) 당시 중국 외교부장이 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그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 같은 점을 찾을 뿐 다른 점은 강조하지 맙시다. 공통점을 먼저 찾아 합의하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남겨둡시다(求同存異). 그러면 역사와 민족이 다르더라도 서로 화합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동존이’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계기다.

저우언라이는 이 말로 29개 참가국 대표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회의는 중국의 의도대로 흘렀다. 이후 구동존이는 중국 외교의 대표적인 협상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외교뿐만 아니라 중국 기업과의 비즈니스 협상 테이블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우선 가능한 품목부터 선적하고, 추후 대상 품목을 넓히자’라는 식이다. 유연성과 실용성이 돋보인다. 중국과의 교류가 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구동존이라는 말이 폭넓게 쓰인다.

중국 고대 사전에는 ‘求同存異’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중국 어문학자들은 구동존이가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맥을 같이한다고 분석한다. ‘논어·자로(論語·子路)’편에 나오는 ‘군자, 화이부동(君子, 和而不同)’의 뜻은 ‘서로 화합하고 어울리지만 동화되지 않고, 서로 다르지만 화합할 수 있는 게 바로 군자의 덕목’이라는 뜻. 화합하되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이지 않고, 서로 달라도 충돌하지 않는 경지다. ‘이견을 인정하면서도 큰 틀의 화합을 꾀한다’는 점에서 구동존이와 화이부동은 서로 통한다.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협상과 관련해 ‘구동존이 원칙’을 제시했다. ‘쉬운 것을 먼저 합의한 뒤 어려운 것은 나중에 하고(先易後難), 공통점을 찾아 합의하되 이견은 뒤로 미루고(求同存異), 순서에 맞춰 점진적으로 추진하자(循序漸進)’는 얘기였다. ‘낮은 수준의 FTA라도 좋으니 일단 논의에 들어가자’는 제의로 해석된다. 원 총리의 구동존이 원칙이 양국 FTA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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