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 책세상] '참 반가운 철학' 外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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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한 소녀가 지금까지 네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다며 호들갑을 떤다. 최초의 고비는 태어났을 때.

몸무게가 너무 적어 모두 오래 살지 못할 거라고 했는데 할머니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살아났단다. 그 후에도 괴질에 걸리지를 않나,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리지 않나, 길가 웅덩이에 빠질 뻔하지 않나, 큰 위기들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는 것이다.

듣고 있던 소녀 왈, "난 태어나기도 전에 두 번이나 생명의 위험을 겪었단다". 외할머니가 전쟁통에 죽을 뻔 했는데, 만약 돌아가셨다면 어머니조차 태어나지 못했을테니 '나'도 없었을 거란 얘기였다.

또 어머니가 오빠를 임신했다가 유산이 되는 바람에 '나'를 낳았는데, 오빠가 태어났다면 '나'를 낳지 않았거나 아이를 낳았다 해도 그 때의 아이는 '내'가 아니었을 거라나? 해서, 두 소녀의 결론은 이렇다. "지금까지 살아 있기가 진짜 쉽지 않다!"

철학의 본질, 즉 삶과 죽음, 인생의 고통과 즐거움, 자아와 타인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신간 『참 소중한 생명』 첫머리에 나오는 우화같은 이야기다. 생명이란 수많은 우연성과 위험 속에서 피어난 행운의 꽃이며, 기적이라는 것, 그렇기 때문에 아끼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신생출판사 아이필드가 내놓은 교양 철학서 '아이필드 필로소피' 시리즈는 이렇게 짤막짤막한 일화나 고전의 인용, 그리고 귀염성있는 컬러 삽화를 통해 10대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선다.

중국 광동교육출판사의 '화설철학(畵設哲學)시리즈'를 우리 말로 옮긴 것이지만 고리타분하지 않다. 또 청소년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낯설 듯한 학자들에 관해선 부록으로 설명해 놓았다.

『참 소중한 생명』 외에도 철학과 철학가들에 대한 『참 반가운 철학』, 시간 등 철학의 대상을 다룬 『참 궁금한 세상』, 철학의 방법론을 보여주는 『참 자유로운 생각』 등 네 권으로 이뤄져 있다.

모든 학문, 논리적 사고의 근본이란 철학도 알고 보면 별 게 아니다. 일상생활에 널린 질문들을 찾는 것, 끊임없이 사물에 대해 놀라고 신기해하고 묻고 답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은 철학을 '난삽한 그 무엇'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어왔다.

그런데 최근 『라쁠라스의 악마는 무엇을 몰랐을까?』(창작과비평사)까지 나온 '피노키오의 철학' 시리즈 등 청소년들이 읽기에 좋은 철학 입문서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 반갑다. 최치원이나 율곡.퇴계 등 우리 사상가들을 예로 들며 철학을 '쌈박하게' 풀어줄 책은 언제쯤 나올까?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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