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가구 찾는 목공방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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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구 목동의 한 공방. 수강생 6명이 가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목조형 가구 디자인을 전공한다는 대학생, 가구디자이너로 거듭나고 싶다는 전직 인테리어디자이너, 10년 뒤에는 작은 목공방을 차리고 싶다는 프리랜서 CF 감독까지, 모두 나무 가구에 반한 사람들이다. 각자 직업은 다르지만 나무를 좋아하고 자신만의 가구를 만들고 싶어하는 공통점이 있다. 나무 자르는 소리가 멈추자 화기애애한 웃음이 공방을 가득 채운다.

“그렇게 칠하면 나무에 붓 자국이 그대로 남아요.” 목동 헤펠레 공방의 유우상(53) 사장이 한정국(64)씨에게서 붓을 넘겨받아 칠을 시작한다. 짙은 갈색이 도는 로즈우드로 색칠하고 있는 가구는 취미반의 한씨가 처음 디자인한 서랍장이다. 붓 자국이 남지 않도록 세심하게 칠하는 유 사장의 손놀림을 본 한씨는 이제 알겠다는 미소를 짓는다. “평소 관심이 있어서 덤벼들었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네요. 그래도 공방에 오면 골치 아픈 일은 싹 잊어버리고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한씨는 개인사업을 접고 은퇴생활을 하던중 이곳에 발을 들였다. 두달 전 취미반에 들어온 새내기라 아직 배워야 할 기술이 많다. 그래도 스스로 아이디어를 내고 만들 수 있어 뿌듯하다. 그동안 만든 가구는 아내와 딸에게 선물했다.

예전부터 나무로 가구 만들기를 좋아했다는 우대균(38)씨는 취미반을 건너뛰고 전문가반에 등록했다. 무역 관련 사업을 하는 우씨가 목공일을 시작한 이유는 내가 쓰는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어서다. “혼자서 이것저것 만들어 봤지만 못을 쓰지 않고 조립식으로 만드는 전통 가구 제작은 터득하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인테리어스타일리스트인 친구에게 목공방을 추천 받았죠.” 우씨는 덴마크의 작가 작품을 보고 그대로 소퍼를 만들었다. 도면 그리는 데 1개월 반, 제작에 4개월 반을 쏟아부은 그의 첫 작품이다. 그 다음 작품은 티 테이블이다. 집안 물건을 모두 자신의 작품으로 채우고 싶다는 그는 목공일을 ‘마음의 수행’ 혹은 ‘정직의 과정’이라고 말했다. 조금만 대충 넘겨도 아귀가 안 맞거나 가구의 균형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정직하게 정성을 다하는 만큼 질 좋은 가구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유 사장의 말이기도하다. “가구는 정성이죠. 쉽게 만드려면 한달 만에도 가능하고, 어렵게 하려면 6개월이 걸리기도 합니다.” 나무 가구에는 만드는 과정과 정성이 고스란히 담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유 사장이 나무 가구를 만들어온 세월은 올해로 30년째다. 그가 처음부터 목공방을 운영한 것은 아니다. 나무 가구 제작과 인테리어 일을 도맡던 목공소에서 25년간 일했다. 하지만 저급 소재로 인테리어 제품을 내놓는 기업들에 밀려 목공소는 위기에 처했다. 친환경에 관심이 없던 시대라 소비자들도 저렴한 가격의 브랜드 제품을 선호했다.

그러던 중 코엑스 건축자재전시회에 모인 사람들이 목공에 큰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공방에 눈을 돌렸다. 그 뒤 헤펠레 목공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2005년 7월 목공방을 열었다.

유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취미로 혹은 제2의 인생을 위해 공방을 찾는 이들이 꾸준히 늘었다. 취미반에 등록한 프리랜서 CF감독인 문해관(40)씨는 후자인 경우다. 50세 정도에 자신만의 공방을 차리고 싶은 게 그의 꿈이다.

“훗날 은퇴를 하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어요. 이 일이라면 큰 욕심내지 않고 욕구도 충족하며 업으로 삼을 수 있겠더라고요. 당장 이걸로 돈을 벌어야 하면 마음이 급하겠지만 10년의 여유가 있으니 즐기면서 준비할 수 있죠.”

목공소에서 공방으로, 유 사장 역시 어떤 면에선 제2의 인생을 경험하고 있다. “나무는 아무리 만져도 싫증나지 않죠. 오히려 마음이 개운해진다고들 해요. 아마 그런 이유로 사람들이 모이나 봅니다.”

[사진설명]한정국(왼쪽)씨에게 유우상 사장이 가구 칠하는 법을 설명하고 있다. “정성을 다해야 좋은 가구가 만들어진다”는 게 유 사장의 지론이다.

< 이세라 기자 slwitch@joongang.co.kr/사진=최명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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