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멘털, 생글생글 신지애의 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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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호 16면

“따악~.”
경쾌한 파열음까지는 좋았는데 흰색 골프공은 점점 오른쪽 숲을 향해 휘어져 나간다. 공이 시야에서 사라질 무렵 기다렸다는 듯 캐디가 외친다.
“가서 봐야 할 것 같아요.”

정제원의 캘리포니아 골프 <113>

주말 골퍼는 ‘가서 봐야 한다’는 말이 OB의 동의어란 것쯤은 잘 안다. 머리에선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캐디를 흘겨본다. 드라이브샷 난조는 다음 플레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 번 열린 뚜껑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헤드를 왜 그렇게 닫아 놓고 치세요?”

2주 전 동반 라운드했던 후배의 이 한마디가 화근이었다. 이후 필자는 드라이브샷을 할 때마다 드라이버 헤드가 닫혀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하는 달갑잖은 루틴이 생겼다. 일단 어드레스에 들어간 뒤 나도 모르게 클럽 헤드를 살짝 여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잘 맞던 드라이브샷이 난조에 빠졌다. 쳤다 하면 슬라이스요, 걸핏하면 OB였다. 나중에는 드라이브샷을 할 때마다 공포심까지 느낄 지경이었다. 드라이브샷 입스란 바로 이런 걸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택중 박사를 만났다. 이 박사는 미국에서 열린 젠(Zen) 골프 세미나 등에 꾸준히 참가하며 골프와 멘털의 관계를 연구해 온 골프심리 전문가다.

“박사님, 골프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겁니까. 멘털이 뭐기에 이렇게 사람을 애먹이는 걸까요.”

필자의 볼멘소리에 이 박사는 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실은 저도 답답해 죽을 지경입니다. 골프를 20년 동안 쳤는데 언제부터인가 어프로치샷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데 영 감이 안 와요. 저는 어프로치샷 입스에 걸렸다니까요.”

드라이브샷 입스와 퍼팅 입스는 들어봤지만 어프로치샷 입스란 말은 또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박사가 어프로치샷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는 이해가 갔다. 필자 역시 드라이브샷 때문에 골치를 썩이고 있기에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다.

지난주 LPGA투어 사이베이스 매치플레이 챔피언십 8강전 신지애와 미셸 위의 승부를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멘털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이날 승부는 5번 우드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신지애의 정교한 골프와 드라이브샷을 270야드나 날려 보내는 미셸 위의 호쾌한 골프가 맞대결을 펼친 셈이었는데 결과는 키가 30㎝나 작은 신지애의 완승으로 끝났다. 미셸 위가 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기에 미셸 위는 일단 멘털에서 신지애에게 졌다. 롱퍼팅이 들어갔을 때는 주먹을 쥐며 포효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사소한 실수 하나에도 인상을 쓰는 건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특히 패배가 확정된 뒤 싸늘한 얼굴로 인터뷰도 하지 않고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건 프로답지 않았다. 반면 신지애는 초반에 미셸 위에게 끌려갈 때도 생글생글 웃었다. TV를 통해 경기를 지켜보던 아내가 한마디를 툭 던졌다.

“위성미(미셸 위의 한국 이름)는 성미가 문제군. (위)성미는 성미(性味)부터 다스려야 할 것 같아.”

골프장 근처에도 가 본 일이 없는 아내의 처방을 듣고 필자는 무릎을 탁 쳤다. 이보다 명쾌한 분석이 또 있을까. 맞다, 나도 그놈의 성미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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