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 문화

시간의 보복 각오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뜨거운 캔커피 하나만 손에 쥐었을 뿐인데 온몸이 따뜻해졌다. 캔커피를 뺨에도 대보고, 몸을 녹여갔다. 연말이라 그런가. 창 밖에 바람이 불고, 참 많은 생각이 흘러갔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액자를 못했던 내 첫 사진전이 기억났다. 흰 마트만 댄 상태에서 리듬감을 살려 전시한 작품들. 다행히 5점이 팔려 뒤늦게 아끼는 작품을 액자에 끼워서 보관했다. 액자 한 것과 안 한 것의 차이는 굉장해서 이렇게 아쉬움으로 남을 줄 몰랐다. 사실 돈 없는 슬픔으로 치자면 극빈자나 매일 30명 정도 된다는 자살자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고, 도움도 못 돼 미안할 뿐이다.

언젠가 방송일을 하는 후배의 "우리나라 예술 분야는 아티스트의 실력보다 인맥, 학맥 인간관계가 중요하다"라는 현 문화판을 꼬집는 얘기도 생각났다. 무척 절감하는 얘기지만 그래도 실력이 중요하다. 남 눈치 안 보고 우직하게 열심히 탐구하면 누구나 좋은 기회를 만나리란 순수한 믿음이 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내게 수능부정 사건은 쇼크였다. 이것은 뭔가 잘못 돌아가고, 가벼운 냄비문화, 학벌과 한탕주의, 돈이면 다 된다는 의식 등 고질적인 우리 사회 분위기에서 나온 게 아닐까한다. 그리하여 너무 쉽게 살려고 하다 오히려 어렵게 살아지는 건 아닐까.

갑자기 많은 생각이 얼음덩이처럼 밀려든다. 나는 4수생이었다. 숨기고만 싶던 나의 이력. 집안도 어려웠는데, 그렇게 원했던 미술공부를 재수 때부터 시작해서 2년 실패하고 응미 계통으로 입학했다가 때려치우고 다시 국문과로 입학했다. 또 유급까지 당해 아버지가 화가 나셔서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는 말까지 하실 정도로 나는 헤매었다. 그때 우연히 발견한 "불행은 언젠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란" 말. 이 말은 내 인생을 바꾼 한마디였다. 몽롱하게 보낸 시간의 보복이 너무 고통스럽고, 무서워서 나는 미치도록 살았다. 좋은 성적에 현역으로 합격한 동생에게 이런 말도 했다. "너처럼 똑똑한 사람은 일찍 자아를 찾지만, 나처럼 아둔한 사람은 스무살도 넘어 자아를 찾기도 한단다." 지나보니 오랜 수험생활은 진정한 나를 찾는 과정이며, 좀 더 큰 마음이 되는 복된 시련이었다. 피로하고 나른해진 몸으로 옛 기억을 더듬다 보면 고통도 감미롭다. 실패나 실수는 두 번 반복을 안 할 때, 완전히 극복할 때 감미로운 추억이 된다.

아무래도 커닝 유전자가 생길 것 같다. 커닝만 하는 학생이 결혼해서 자식을 낳으면 커닝하는 아이를 나을지도 몰라. 하도 커닝을 해서 눈도 옆으로 자꾸 길어지는 거야. 미꾸라지처럼. 아주 슬픈 일이지. 연필로 하늘을 찌르면 비가 쏟아지고, 살짝 커닝학생들의 손을 찌르면 후회의 눈물이 쏟아질까. 수능 부정 학생들이 충분히 반성하면서 "불행은 자신이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임"을, 인과응보의 인생 속에서 진정한 나를 찾으란 뜻임을 뼈아프게 깨달았으면 좋겠다.

나폴레옹의 금언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 어찌 수능 부정 학생에게만 해당할까. 대통령에서부터 정치가들, 당신도 나도, 연약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사회의 여러 문제 중 무엇보다 무분별한 개발로 망가진 산야로부터 썩어가는 갯벌로부터 오는 보복을 각오해야할지 모른다. 세상이 돈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삶은 돈이 다가 아니며, 우리가 인생을 결코 쉽게 경박하게 여길 수 없는 엄연한 진리가 있음을 살피고 싶다.

그 진리를 찾기 위해 늘 깨어 살아야 하겠지. 미치고 싶은 때는 너무나 많다. 그래도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지. 그렇지 않으면 망하거나 쓰러지는 일밖엔 없어. 이곳에서 일어날 다양하고도 멋진 사건들이 그립다. 연말이라 다들 조금은 착해진 눈빛으로 구세군 냄비에 돈을 쏟아넣겠지. 곧 어쩔 수 없는 애절한 심정으로 새해를 맞이하겠지. 2004년. 고마워. 네가 무척 그리울 거야. 안녕!

신현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