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늘어나는 전시회, 부실해지는 화랑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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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경제난으로 미술계가 심각한 불황을 겪고 있지만 화랑이나 전시회는 오히려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전국 화랑의 절반 가량이 모여있는 서울의 경우에 두드러진다.

지난 해 문을 닫은 화랑은 서남미술전시관 등 10곳이지만 새로 생긴 전시공간은 23곳을 헤아린다.

화랑이 늘어나는 이유는 전시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문예진흥원 문예연감에 따르면 미술전시회는 99년 5천7백여건, 2000년 6천3백여건이 열렸다. 2000년 수치는 역대 최고치이며 이중 서울지역 전시가 48%를 차지했다. 지난해 통계는 아직 없지만 더욱 늘어난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작품이 팔리지도 않는데 전시회는 왜 더 많이 열리는가□ 김달진 미술연구소의 김달진 소장은"졸업전시도 대학을 벗어나 화랑에서 여는 풍조가 생겼고 쏟아져나오는 신진 작가들의 경력쌓기 전시도 더욱 늘고 있다"며 "인사동 지역의 화랑 증가는 서울시가 앞으로 문화지구 지정을 마치면 세금 등의 혜택이 늘어날 것을 기대한 이유도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전시가 많아도 기획.초대전은 줄어들고 대관전만 늘어난다는데 있다. 자비로 상업화랑을 빌리는 대관전은 전시의 수준을 믿기 어렵다. 그에비해 미술관이나 화랑이 스스로 기획하는 기획.초대전은 신뢰도가 높다.

공공미술관이 대관을 하지 않는 것도 수준높은 전시를 통해 공공에 봉사한다는 설립취지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인사동 지역에서 기획 전문화랑은 선화랑과 갤러리 사비나 등 두어곳에 지나지 않는다.

인사아트센터의 경우 지난해부터 지하 1층과 2층 전시장을 거의 대관 전용으로 운용하고 있다."기획전을 해봐야 작품 판매 수입이 생기지 않아서 대관으로 돌린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새해들어 현대백화점이 서울 신촌점과 압구정점에 운영하던 현대아트갤러리를 폐쇄했다. 신촌점은 이벤트 홀로, 압구정점은 특설매장으로 바꾸기 위한 보수공사가 한창이다. 신촌점은 지역 유일의 화랑이었고, 압구정점은 1980~90년대 명성을 날리던 주요 전시공간이었지만 경영논리에 굴복한 것이다.

외형은 커져가지만 속은 점점 부실해지는 화랑가의 모습이 한국 미술의 장래를 보는 듯 해서 걱정스럽기만 하다.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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