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홍의 정치보기] 정작 영남은 조용한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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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해 10월 6일 YS의 상도동 자택.

"자민련 총재를 맡아보시오."

YS는 이수성 전 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당 의원의 합류도 예고했다. 교섭단체를 만들어주겠단 얘기였다. 李전총리는 일단 사양했다. JP 얘기를 들어봐야 했다.

李전총리는 곧바로 JP를 찾아갔다. JP도 같은 말이었다. 얘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결국 총재직을 맡기로 사실상 결론을 냈다.

그러나 다음날. 얘기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한나라당 의원의 합류시기가 문제가 됐다. 무엇보다 시간 여유가 없었다. 이틀 뒤가 자민련 전당대회였다. 그 때문에 YS.JP가 심야에 만났다. 그러나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그럼 일단 내가 총재를 맡지요. 나중에 다시 얘기합시다."

YS를 만나고 나온 JP는 李전총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시 상황을 李전총리에게 확인해 봤다.

"자민련 총재직 문제로 많은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민국당적을 갖고 있어 명분이 부족했어요. 민국당과 자민련이 합당을 하면 몰라도."

그러나 당시 상황에서 합당은 곤란했다. 김윤환 민국당대표 때문이다. 그의 구상은 민주당 주류가 포함된 정계개편이다. 급하다고 질러갈 수 없었다.

영남후보론. 대선정국의 가장 큰 변수다. 호남정권의 후보로 영남출신을 내세운다는 거다. 호남표와 영남표를 묶자는 발상이다. 그래야 이회창후보를 누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정계개편도 그때문에 하자는 것이다.

경북출신인 李전총리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특히 집권세력의 거부감이 덜하다. 문제는 지금이다. 김윤환 대표는 "이수성씨라면 동교동도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YS.JP가 여전한지는 모르겠다. 게다가 YS는 이회창 총재를 만났다. 7일엔 JP도 만난다.

영남권 후보로 또 다른 관심의 대상이 있다. 한나라당 박근혜 부총재다. 그러나 그는 한나라당 대권후보 경선에 출마한다. 일단 당내에서 뭔가를 도모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그의 요구다. 이회창 총재를 향하고 있다. 첫째가 공정 경선을 위한 룰의 개정이다.

"총재가 대의원 3분의1을 사실상 지명하는 제도론 안돼요. 그렇게 해서 뽑히면 뭐합니까. 창피한거죠."

완전히 뜯어고치란 요구다.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하면 경선에 임하지 않겠어요."

"끝내 안받아들여지면요?"

"민주정당임을 포기한 거니까 내 거취를 생각해봐야지요."

거취 운운은 처음이다.

그에게 영남후보론을 물었다. 의외로 바람직스럽지 않다는 대답이 나왔다. 그 자체가 갈등의 산물이란 주장이다. 지금은 화해와 화합이 필요하단 것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그게 그얘기다. 굳이 '영남'자를 붙이지 말자는 거다. 그점에 있어선 이수성 전총리도 같은 견해다.

李전총리는 첫째도 화합, 둘째도 화합이라고 했다. 두사람의 공통점은 또 있다. 이회창총재에 대한 평가다. 화합과는 거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니 朴부총재는 도울 명분이 부족하다는 논리다. 李전총리는 반대할 명분이 쌓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권욕은 아닌 것 같다. 특히 李전총리는 "뭐가 되기 위해 앞장서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朴부총재도 대권 자체가 목표는 아닌 듯싶다.

영남후보론. 화해와 화합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화합은 영남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없지만 누구도 할 수 있다. 결국은 사람이다. 이 사실은 알아두자. 정작 영남은 조용하다는 걸.

이연홍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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