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에서] 클린턴 애견, 죽어서도 유명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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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에서 대통령 가족은 "1번(First)"의 영예를 누린다. 대통령 부인은 퍼스트 레이디(First Lady), 가족은 퍼스트 패밀리(First Family)이며 대통령 전용기는 공군 1호기(Air Force One)다.

개.고양이 같은 애완동물도 이 영광의 호칭을 받는다. 바로 퍼스트 페츠(First Pets)다. 한국어로 하면 영부인.영식.영애에 이어 '영견(令犬).영묘(令猫)'쯤 되는 셈이다.

3일 미국에선 '전직 영견'의 죽음이 화제가 됐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애견 버디가 차에 치인 것이다. 언론은 클린턴 부부와 버디의 사진은 물론 버디의 일생과 백악관 생활, 클린턴 가족의 애도성명 등을 자세히 보도했다. 버디의 횡사(橫死)는 새해 벽두 미국의 가장 요란한 부음이 됐다.

버디는 2일 오후 클린턴 부부의 뉴욕 채파쿼 저택 인근에서 사고를 당했다. 멕시코 아카풀코 해변에서 휴가를 즐기던 클린턴 가족은 즉각 애도성명을 발표하고, "우리의 충실한 동료로 많은 기쁨을 준 버디를 우리는 정말 그리워할 것"이라며 복받치는 슬픔을 표했다.

버디는 운이 좋았다. 4년반 전 클린턴이 백악관 주인이었을 때 입양돼 퍼스트 펫이 됐다. 버디란 이름은 클린턴이 친척에게서 따온 것이다.

버디는 3년 넘게 백악관에 살며 TV 카메라에 자주 찍혀 미국인에게 아주 유명해졌다. 사냥개의 일종인 버디는 얌전할 줄을 몰랐다.

클린턴이 버디의 목에 매여진 줄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고, 버디가 기자들의 도넛을 순식간에 삼켜 버린 적도 있다.

클린턴 가족의 고양이는 삭스였다. 버디와 삭스는 전국의 수많은 어린이 팬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편지들을 묶어 1998년 『퍼스트 페츠에 보내는 어린이들의 편지』란 제목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영견'도 TV에 자주 등장한다. 대 테러전쟁을 치르면서 대통령 전용헬기(해병 1호기)에서 내리는 부시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 있을 때도 '영견'은 즐겁게 뛰어다닌다. 미국인에게 퍼스트 페츠는 작은 즐거움이다.

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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