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아시아 수영왕 미 하버드대생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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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쪽 다리를 완전히 못쓰는 한국 청년이 미국 하버드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1997년 7월 동아마스터즈 수영대회에서 15살의 나이로 비장애인들과 겨뤄 배영과 개인혼영에서 각각 3등을 차지해 화제를 모았던 공승규(孔勝奎.19.당시 서울 반포중 3)군이 주인공이다.

99년 1월 방콕 장애인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딴 뒤 새로운 도전을 위해 미국에 홀로 건너간 그는 지난 15일 하버드대 입학허가서를 받아쥠으로써 또 한번의 인간승리를 일궈냈다.

"최선을 다하면 어떠한 장애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었어요."

또 하나의 목표를 달성한 순간 그는 비로소 남 모르는 고난과 힘겨운 극복의 순간들로 연속된 지난 2년반을 돌아봤다.

부모 곁을 떠나 미국 워싱턴 조지타운대의 부속고교 성격인 프리퍼러토리 스쿨 2학년에 편입한 99년 8월 그는 '외토리 휠체어'였다.

"처음엔 말을 알아듣지 못해 숙제가 뭔지도 모른 채 헤맸지요. 아무도 없는 곳, 모든 걸 혼자 풀어가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휠체어 두 바퀴와 두 팔뚝이 가진 것의 전부인 그는 적극적이고 열성적인 천성으로 낯선 환경과 차츰 친해졌다.

급우들과 수학문제를 함께 풀면서 우정을 쌓아갔고, 학교 행사 때마다 적극 참가했다. 초등학교 1년 때 시작한 바이올린 솜씨 덕에 학교 제1 바이올리니스트로 나서 큰 인기를 얻었다.

짬짬이 시간을 내 장애인 수영장의 안전요원으로 봉사도 했다.

친구들은 올 초 그런 그를 기숙사 관리장으로 뽑았다.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지난 6월 애리조나 장애인경기대회에서 금메달 셋, 은메달 한개를 따면서 배영 50m에서는 대회신기록(47초91)도 세웠다. 이로써 승규군은 낯선 미국생활에 자신감을 찾았다.

마지막 학기에선 영어(92점)를 뺀 나머지 과목에서 평균 97점을 얻어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지난달 미국의 수능시험격인 SAT에 응시, 1천4백60점을 받아 하버드대 지원자격(1천3백점 이상)을 거뜬히 따냈다.

미국으로 떠나올 때 "금메달을 딴 투지라면 장애인 차별이 없는 미국에선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아버지 공영배(孔泳培.60.부동산 임대업).어머니 우미애(禹美愛.54)씨가 해준 격려가 늘 힘이 됐다.

외환은행 지점장 출신인 孔씨의 3녀1남 중 막내인 승규군은 82년 척추지방종이라는 희귀병을 안고 태어났다. 척추에 지방이 차 신경을 마비시켜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하는 병이다.

어머니 禹씨는 "은행설립 건으로 나이지리아에서 근무하던 남편을 따라가 독한 풍토병 예방약을 복용한 것이 임신중독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보다 항상 총명했다. 성격도 밝아 서울 반포초등학교 시절 2년 동안 반장을 한 꿋꿋한 소년이었다. 그때 물리치료차 시작한 수영은 결국 그의 삶을 지탱하는 재산이 됐다.

승규군은 1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제 경제학을 전공해 다른 사람들에게 보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좌절의 순간들을 늘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겨내온 아들이 자랑스럽다"는 아버지의 말에 승규군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드린다"고 답했다.

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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