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수표, 중국에서 살길을 찾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여행자수표, 한때 해외여행의 필수품이었다. 무엇보다 많은 양의 현금을 갖고 다니는 수고를 덜어줘 편리하다. 분실해도 다시 발급받을 수 있다. 게다가 현금으로 환전하는 것보다 환율이 유리하다.

하지만 막강한 경쟁자를 당할 순 없었다. 신용카드 말이다. 긁기만 하면 되는 신용카드의 편리함에 밀린 것이다. 여행자수표 시장은 빠르게 위축됐다. 2006년 토마스쿡에 이어 2008년 비자도 여행자수표 사업을 접었다. 남은 건 119년 전 여행자수표를 처음 만들어낸 아메리칸익스프레스(아멕스)뿐이다.

여행자수표의 독점 사업자 아멕스가 24일 중국 위안화 여행자수표를 새로 내놨다. 1999년 유로화 여행자수표 발행 뒤 11년 만에 내놓은 신상품이다. 여행자수표가 발행되는 통화(미국 달러·영국 파운드·유로·호주 달러·일본 엔·캐나다 달러) 중 첫 신흥국 통화이기도 하다.

아멕스는 중국 정부와 2년가량의 협상 끝에 사업허가를 따냈다. 중국이 아닌 곳에서 위안화로 된 지불수단을 발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통해 아멕스는 여행자수표 시장을 살릴 좋은 기회를 잡았다.

“지난해에만 1억2600만 명이 중국을 찾아와 총 397억 달러를 썼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현금을 이용했다고 봅니다.”

아멕스 글로벌 프리페이드 아태지역 로런스 찬 사장의 설명이다. 베이징·상하이·광저우 같은 중심지를 뺀 나머지 지역에선 신용카드 사용이 어려워서 대부분 여행객이 현금을 주로 쓴다. 신용카드와의 경쟁 없이 여행자수표가 들어갈 수 있는 시장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게다가 중국 방문자는 해마다 늘고 있다. 세계관광기구에 따르면 중국은 2015년 전 세계 여행지 1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화 여행자수표는 일단 500위안짜리로 나온다. 가장 큰 단위의 위안화 화폐(100위안)보다 단위가 크다. 국내에선 다음달부터 국민·신한·외환·우리·하나은행에서 취급한다. 현금화할 땐 중국 전역에 있는 2000여 개 중국은행 지점을 이용할 수 있다.

위안화 여행자수표는 한국·일본·미국을 포함한 총 7개국에서 먼저 판매된다. 아멕스는 한국시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지난해 중국을 방문한 해외 여행객 중 가장 많은 게 일본인(331만 명), 그 다음이 한국인(320만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의 여행자수표 시장은 빠르게 위축됐다. 국민과 외환, 두 은행의 지난해 여행자수표 판매금액은 9924만 달러로 2007년의 5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친다. 금융위기 여파로 해외여행객이 줄어든 영향이 있지만, 신용카드 인기에 밀린 탓이 크다. 국민은행 외화상품부 황일 팀장은 “신용카드가 편의성 면에서 매우 강력한 지불수단이기 때문에 여행자수표는 현금과 신용카드 사이의 틈새상품 정도로 규모가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찬 사장은 “미국·중국 등에 나가 있는 한국 유학생이 워낙 많기 때문에 한국은 여행자수표에 대한 수요가 꾸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여행자수표의 주적은 신용카드가 아니라 현금”이라며 “사람들이 현금을 쓰는 한 여행자수표 시장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멕스는 중국 위안화를 시작으로 다른 브릭스(BRICs) 국가 진출 기회도 탐색한다는 계획이다.

한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