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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 칼럼] 특집기획 다뤄야 할 '정치브로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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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권력과 정치권의 위신이 또다시 추락한 한 주였다. 전 경찰청장은 조작된 살인사건의 은폐와 관련돼 구속되고, 최종길 교수는 정보기관원들에 의해 살해됐다는 증언이 나오고, 법무부 차관은 금품수수 의혹으로 물러났다.

학생운동권 출신을 포함한 10여명의 정치인들이 불법대출과 주가조작으로 구속된 사업가로부터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수천만원씩의 돈을 받아 쓴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주 1면을 뒤덮은 이 사건들은 적어도 유형에 있어서는 새로운 점이 없다. 의문사 사건에 국가기관이 연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전직 경찰청장의 구속도 늘 있었던 일이고, 고위관료와 정치인들의 금품수수 스캔들 역시 항상 보아오던 것이다.

은폐된 사건의 진상이 당사자들 내부로부터 폭로된 점이 과거의 사건들과 같으며, 사건 전말이 드러날 때까지 혐의를 부인하는 당사자들의 행동양식 또한 판박이처럼 똑같다. 혐의가 입증되고 사법처리가 돼도, 얼마 뒤에는 슬그머니 풀려나 사회면 단신쯤으로 실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이들은 형식적으로는 진부한 사건들이다.차관이 교도소에 가는 것만 아이러니가 아니라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신문이 이처럼 진부한 사건들로 지면을 채우게 되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이런 진부한 사건들이 반복되면서 우리의 가치체계와 언어의 질서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사회가 인맥에 의해 움직인다는 불변하는 사실 때문이다. 차기 대선후보자들에 대한 대학교수들의 줄서기를 비판한 '김창호 기자의 철학에세이'나, 정치 브로커 문제를 다룬 사설과 취재기사, 그리고 한국 사회를 '무소불위의 정치 브로커 세상'이라고 개탄한 시론은 모두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브로커가 필요한 것은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정상적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과 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통역이 필요하고,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배달이 필요하다. 공적인 언어에 사적인 인연을 결합시키는 이 부조리한 관습이 비단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고, 우리나라의 번창하는 서비스산업의 기반이 되고 있다. 이것은 정치 브로커 몇 사람을 잡아넣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차제에 이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특집기획을 제안하고 싶다. 언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사회는 그것에 기반을 두는 신문에도 치명적인 사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거의 끝났다고 하나 정작 전쟁의 실상이 알려진 것은 얼마 안된다. '외신종합'으로 만들어지는 관련기사들 속에는 이 전쟁의 희생자들에 대한 보도가 드물고, 살아남은 사람들에 관한 기사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상언 기자의 취재기 '지금 카불에선'을 5회 연재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만 벌써 특파원을 철수시킬 만큼 이 전쟁의 기사가치가 떨어졌는지 묻고 싶다. 오히려 이제까지 외신보도에 의존함으로써 가려졌던 전쟁의 이면을 다룬 기사를 기대하게 된다. 그래야 우리가 남의 불행에 대해 무기력하고 냉혈적인 구경꾼에 불과하다는 자괴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 같다.

토요일자 '행복한 책읽기'의 머리기사 제목 '지구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는 마치 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와 모순의 상황들에 대한 패러디처럼 들린다.한국에 희망이 있으려면 무엇보다 언어가 제 힘을 찾도록 해야 할 것이다. 브로커와 연줄에 의해서가 아니라 '언어'에 의해 의사 소통이 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安奎哲(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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