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잘못된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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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르트르의 오랜 사상적 동지였던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1956년 소련 군대가 약소국 헝가리를 침략하는 것을 보고 질겁한 나머지 스탈린에 대한 비판자로 돌아섰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새로운 미래를 위한 진보적 폭력”이라고 강변하면서 퐁티를 격렬히 비난했다. 침략의 ‘사실’보다 그것의 ‘해석’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였다. 그 후 북한의 남침이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자 사르트르는 다시 남침유도설이라는 것을 내놓았는데, 북한이 남침하도록 미국이 함정을 팠다는 것이다. 북한의 남침은 ‘진보적 폭력’이 된 셈이다. 사르트르의 억지에 질린 퐁티는 끝내 그와 결별하고 말았다. “우리는 서로 잘못 사랑했다!” 훗날 사르트르가 토해낸 고백이다.

그러나 그가 오랜 동지 아롱과 싸우고 퐁티와도 등을 돌리게 된 것은 그들과의 잘못된 사랑 때문이 아니었다. 이념의 우상, 독선(獨善)의 도그마(dogma)를 향한 잘못된 사랑 때문이었다. 그는 ‘실존의 자유’를 사랑했으나 끌어안은 것은 소련의 교조주의(敎條主義)였고 입 맞춘 것은 북한의 주체사상이었다. 소설 『자유의 길』을 쓴 탁월한 지성이 이데올로기의 굴레에서 한 치도 자유롭지 못했던 것은 기막힌 아이러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쪽의 군사독재에 이를 갈며 저항했던 지식인들이 북쪽의 선군(先軍)독재에는 턱없이 너그럽기만 하다. ‘북침’이라고 비난하던 6·25가 남침으로 밝혀진 후 ‘통일전쟁’이라며 미화한다. ‘사실’을 ‘해석’으로 바꾼 것이다. 사르트르의 억지 그대로다.

6·25 남침 60주년인 오늘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국적 전문가들이 참여한 민·군 합동조사단은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을 배제할 만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들을 제시함으로써 천안함 격침이 북한의 테러임을 명백하게 입증했다. 그러자 이제껏 북한 관련 의혹을 ‘소설’이라고 깎아 내리면서 좌초·충돌·내부폭발 등의 ‘판타지’를 쏟아내던 사람들이 도리어 정부와 국군을 사납게 비난하면서 안보 무능에 대한 사과·해임·군사재판을 요구하고 나섰다.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냉철해야 할 지식인들이 어제 한 말을 오늘 뒤집으면서도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정부와 국군의 책임은 태산처럼 크다. 사과·해임·군사재판도 미흡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책임이 아무리 크다 한들 가해자의 책임보다 더 클 수는 없을 터인데도 정작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런 비판이 없다. ‘10년 햇볕’을 쬐는 동안에도 북은 핵실험을 강행했지만, 응징은커녕 오히려 ‘일리가 있다’고 두둔했다. 무슨 금기(禁忌)이거나 무오류(無誤謬)의 계율인 듯, 북한 앞에서는 언제나 입을 닫는다. 그 일그러진 지식을 ‘진보’의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이 위중(危重)한 안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북을 감싸려고만 드는 것이 남침유도설과 매우 닮았다.

이유는 분명하다. ‘잘못된 사랑’ 때문이다. 사르트르가 눈멀었던, 그 지독한 도그마의 사랑 말이다. 객관성·보편성과 소통하지 못하는 주관은 억지요 고집일 뿐이다. 이름난 지식인들, 내로라하는 이론가들이 도그마의 허상(虛像)에 눈멀어 얼토당토않은 억지를 부리는 모습은 늘 우리를 놀라게 한다. 퐁티가 사르트르의 억지에 놀랐던 것처럼. “아무리 어리석어도 남을 꾸짖는 데는 밝고, 아무리 총명해도 자기 잘못을 깨닫는 데는 어둡다(人雖至愚責人則明 雖有聰明恕己則昏).” 중국 북송의 재상 범충선공(范忠宣公)이 남긴 통찰이다. 특히 지식인들에게는 새벽의 죽비(竹扉) 소리 같은 채찍일 것이다. 천년의 세월을 건너온 지혜가 천둥 같은 울림으로 가슴을 때리지 않는가?

이우근 법무법인 충정 대표·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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