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욱 대기자의 경제 패트롤] 오늘의 일본에서 배울 것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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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거의 20년 전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일본을 4주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 보면 이른바 버블 붕괴의 초기 조짐이 시작되던 때였지만 당시 일본은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1990년의 일본 재정수지는 선진국 중 유일하게 흑자였고, 국가채무도 일반적으로 건전하다고 평가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수준이었다. 도요타와 소니로 대표되는 일본 수출제조업체들은 미국·유럽 따라잡기에서 벗어나 기술력·상품력에서 독자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며 세계 최고를 가시권에 두고 있었다. 경기가 뚜렷한 하강 조짐을 보이기 시작할 때도 일본은 튼튼한 재정으로 공공투자를 일으켜 조금만 버텨주면, 엔화 가치를 일거에 두 배 이상으로 올려버린 85년 플라자합의 충격도 이겨낸 ‘메이드 인 재팬’의 막강한 경쟁력으로 충분히 타개할 수 있으리란 믿음이 있었다. 89년 세계경쟁력 순위를 매기기 시작한 스위스 국제개발연구원(IMD)도 89∼93년 내리 5년간 일본을 맨 윗자리에 올려놓았다. 되돌아 생각하면 그때가 일본 경제의 정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후 방만한 공공투자와 경쟁적으로 늘린 복지 비용, 악명 높은 정부 규제와 높은 법인세 부담 등에 데인 기업들의 해외 탈출 등이 얽히며 일본 경제는 길고 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일본을 바라보는 시선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 올 들어 도요타 리콜 사태가 터지고, 주요 신용평가회사가 국가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거나 하향 가능성을 경고한 데 이어 이달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이 공개적으로 재정개혁을 주문하고 나섰다. 그리고 지난주 IMD는 ‘세계경쟁력연감 2010’에서 일본의 순위를 17위에서 27위로 10단계나 끌어내렸다. 도시국가 성격의 싱가포르·홍콩을 제외하면 아시아 유일의 선진국으로 자부하던 일본이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23위)과 중국(18위)·대만(8위) 모두에 뒤처진 것이다. 게다가 적신호는 꺼지지 않고 있다. 이미 20%를 넘어선 65세 이상 고령인구비율은 계속 늘고 있고 이는 복지 부담 증가, 가계저축률 감소와 맞물리며 국채 발행의 해외 의존도 심화, 경상수지 적자 전환 등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 리더십 부재의 일본 정치가 이런 악순환을 차단할 능력이 있는지도 우려의 대상이다.

여전히 막강한 저력을 갖춘 일본에 대한 걱정이 지나쳤는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앞서간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 우리는 뭘 버리고 뭘 취하며 앞으로의 10년·20년을 맞을 거냐는 것 아니겠는가.

박태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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