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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왜 맥없이 무너졌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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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탈레반군이 당초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본거지인 칸다하르까지 내주며 맥없이 무너지자 그 몰락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전쟁 초반 대다수 군사 전문가들은 탈레반군의 용맹무쌍한 저항으로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작전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탈레반군은 이슬람원리주의 이론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강인한 정신력과 10년간(1979~89년)에 걸친 소련군과의 다양한 실전경험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군이 진흙탕에 빠져 장기간 고전할 것이라는 전망에 다수가 고개를 끄덕였었다.

아프가니스탄 병사들과 싸웠던 전 소련군 장교는 "게릴라식 매복작전에 능하고 자살공격을 무차별적으로 가해와 소련군을 전쟁 내내 불안에 떨게 했다"고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의 용맹성을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90%를 장악하고 있던 탈레반군은 미국과의 전쟁 두달 만에 저항다운 저항 한번 못해보고 무릎을 꿇고 말았다. 군사 전문가들은 그 요인을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

◇ 미 공습작전 주효=밤낮을 가리지 않은 미군의 공습이 탈레반군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미군은 B-52 폭격기를 동원한 융단폭격과 데이지 커터 등 핵무기급 폭탄을 투하하는 등 맹폭을 퍼부어 탈레반의 방공망과 비행장 등 군 기반시설을 초토화했다. 특히 통신망을 파괴해 지휘통제 시스템을 마비시킨 것이 치명타였다.

◇ 고립무원의 처지=외교적 고립으로 보급망이 두절돼 식량과 무기 등 군사물자 부족에 허덕인 것도 탈레반군의 와해를 재촉했다.

탈레반군의 무자헤딘 병사들은 80년대 소련과의 전쟁에서 비록 군사력에서는 열세였지만 이웃 국가인 파키스탄.중국.아랍권 및 미국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무기와 자금.식량등을 밑천으로 게릴라전을 펼쳐 침략군을 몰아냈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는 주요 보급 루트이자 동맹국이던 파키스탄마저 등을 돌림으로써 탈레반 병사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고, 혹독한 겨울을 버텨낼 여력이 소진됐다.

◇ 미 중앙정보국(CIA)의 심리전=CIA가 펼친 고도의 심리전이 탈레반군 격퇴에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CIA는 미군의 개전 이후 탈레반의 거점인 남부 파슈툰 지역을 주대상으로 종족간 갈등을 부추겨 반탈레반 세력을 규합하는 심리전을 펼쳐왔다.

파슈툰.우즈베크.타지크 등 종족 구성이 복잡한 아프가니스탄은 한 종족 내에서도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편으로 갈라져 있어 CIA 공작원에 매수되거나 포섭된 군벌이나 토착세력들이 지난달부터 도처에서 반탈레반 전선을 구축하면서 탈레반군의 입지를 크게 좁혀왔다.

◇ 전략의 실패=탈레반군이 개전 이래 고수해온 거점 방어 전략이 치명적인 실수였다. 산악지역을 무대로 한 게릴라전에서 최고의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탈레반이 전력을 마자르 이 샤리프.쿤두즈 등 거점도시에 집중배치함으로써 미 공군의 집중공격을 자초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또한 아랍국가 및 체첸 등 외국에서 탈레반에 자원한 극렬 과격분자들의 과격한 행동이 아프가니스탄 출신 병사와 현지주민들의 원성을 산 것도 군 내부의 결속력을 크게 떨어뜨려 막판 이탈자가 속출하는 원인이 됐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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