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벤처다] 上. 천당서 지옥 … 벤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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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우리나라의 벤처 역사는 대략 ▶1980년대 초부터 98년까지의 긴 태동기▶98년 하반기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의 짧은 벤처 붐 ▶이후 침체기 등 세 단계로 나뉜다.

80년대 벤처의 원조로 흔히 큐닉스컴퓨터의 이범천 회장을 꼽는다. 81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직을 내던지고 32세에 큐닉스컴퓨터를 세워 96년까지 매출 1300억원대의 중견기업으로 키웠다. 이민화씨는 85년 의료기기 벤처인 메디슨을 설립해 매출 2000여억원 규모의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김대중 정부 때 초대 벤처기업협회장을 맡아 사실상 벤처지원 정책의 골격을 짜는 등 '벤처업계의 대부'로 꼽혔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김익래 다우기술 대표 등도 1세대 벤처인들이다. 한국종합기술금융이나 한국기술투자 등도 1세대 벤처캐피털로 꼽힌다.

외환위기라는 무거운 짐을 넘겨받은 '국민의 정부'는 벤처 육성책에 경제회복의 사활을 걸었다. 코스닥 시장 활성화 등 시책에 힘입어 98년 하반기부터 벤처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마침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산업이 호황이어서 돈과 인재들이 벤처업계로 몰렸다. 코스닥 시장은 수백억원대 벤처 주식 갑부의 산실이었다. '묻지마 투자'와 '무늬만 벤처'가 판치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하지만 IT 거품이 꺼지면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코스닥도 2000년 상반기부터 가파른 내리막길을 걸었다. 현재 코스닥 주가는 역대 최고치(2000년 3월 10일 지수 2834.4)의 13% 수준을 맴돈다.

<그래픽 참조>

2000년 말부터는 곪은 상처도 터졌다. 무슨 무슨 '게이트'다 하는 벤처 관련 금융.주식 비리가 꼬리를 이었다. 추앙받던 벤처스타마저 자금 횡령.유용 등 죄로 줄줄이 쇠고랑을 찼다. 벤처업계의 도덕성과 신뢰성이 땅에 떨어졌다. 벤처업계는 이후 끝모를 동면기에 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다만 혹한 속에서 살아남은 벤처들이 꾸준히 크고 있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휴맥스.다음커뮤니케이션.안철수연구소.엔씨소프트.터보테크 등이 자리를 잡았다. 레인콤.NHN 등은 성공 신화를 만들고 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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