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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틴틴 경제] 왜 경영자하면 잭 웰치 전GE 회장을 꼽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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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지난 9월까지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회장을 지냈던 잭 웰치라는 사람 이야기를 많이 들어 보셨지요 ?

세계에는 수많은 기업이 있고, 기업인들도 많지만 사람들은 왜 그를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꼽을까요 ?

그는 45세 때인 1981년 4월 1백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세계적 기업 GE의 최연소 회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회장을 맡은 지난 20년 사이 GE는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연 매출은 1천2백90억달러로 다섯배, 순이익은 1백27억 달러로 여덟배나 커졌답니다. GE의 시장 가치는 무려 5천3백억달러(6백40조원)로 우리나라 5~6년 예산에 맞먹어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회사가 된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외형적인 성과만으로 그가 평가받는 것은 아닙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갖고 끝없이 혁신과 변화를 추구해 목표를 달성해온 과정을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것이지요.

"나는 GE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은 GE를 바다 한가운데에서 유유하게 움직이는, 견고하고 웅장한 초대형 유조선이라며 자랑스러워했지만 나는 민첩하고 수익성 높은 스피드 보트를 원했습니다."

웰치 회장은 취임 초기부터 거대한 혁신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유조선을 뜯어 고쳐 스피드 보트로 만들겠다는 것이었지요. 웬만한 사람은 엄두도 내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지금은 기업이 신속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에 속하지요. 워낙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어서 고객의 욕구를 충족하려면 의사결정도, 생산도, 배달도 빨라야 한다는 것이에요.

하지만 20년 전만 해도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기업은 크고 튼튼하면 됐고 GE처럼 역사가 깊은 기업은 망할 리가 없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었지요. 1878년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만든 이 회사는 미국에서도 가장 오래된 회사 가운데 하나였답니다. 당시 GE는 누가 봐도 건실한 회사였습니다. 40만명의 직원이 연간 2백50억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15억달러의 순이익을 벌어들였어요. 사업 영역은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토스터에서 발전설비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 손을 대고 있었지요.

웰치 회장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세상은 자꾸 바뀌는데 GE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머지 않아 3류 기업이 될 것이라는 불안을 갖게 됐어요. 근본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은 반발할 것이 뻔했지요. 변화를 싫어했기 때문이에요. 적잖은 사람을 내보내야 하는 일이기도 해서 온갖 비난을 각오해야 했습니다. 웰치 회장은 그래도 밀고 나갔습니다. 그것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1등이나 2등이 아니면 과감히 사업을 포기하기로 했어요. 이 과정에서 수많은 직원과 사업이 떨어져 나갔습니다."고쳐라, 팔아라, 폐쇄시켜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며 회사를 대표하는 냉난방기 사업까지 팔아 치웠답니다. 직원은 5년 사이 30만명으로 줄어들었어요.

언론도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어요. 그에게 '중성자탄'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건물은 두고 사람만 죽이는 신무기에 빗대 '비정한 사업가'로 매도한 것이지요.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미시건 대학 경영학과의 노엘 티치 교수는 '20세기 최고의 경영자'로 칭송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인 재닛 로이는 '위대한 영웅'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언론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으로 인정하고 있어요. 90년대 들어 '잭 웰치 연구 붐'이 일어났지만 앞으로 더 많은 학자.경영자들이 그를 연구하게 될 거예요.

그가 GE에서 했던 작업은 근본적으로 관료주의를 없애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층층이 만들어 놓은 자리에 사람들이 앉아 별로 하는 일 없이 권위나 내세우는 것이 관료주의의 특징이지요. 웬만큼 일하고 큰 잘못이 없으면 그럭 저럭 살아갈 수 있는 조직이에요.

회장 취임 후 그는 관료주의를 없애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쏟아 부었습니다.

우선 언로(言路)를 텄습니다. 직원들이 불만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지요.'타운 미팅'이라는 제도를 운영해 회장이 직접 현장 직원들과 자유 토론을 했어요. 직원들은 어떤 불만도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회장은 즉각 그들의 불만이 시정되도록 했지요.

'워크-아웃 미팅'도 GE의 특수한 제도예요. 각 분야 실무자들끼리 회사를 벗어나 합숙을 하며 토론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부서와 사람들 사이의 벽을 허물겠다는 취지였어요. 회장은 이 미팅에서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내게 했습니다. 상급자는 여기서 나온 결론을 무조건 채택해야 했지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확실하게 보상도 했어요. 주식을 나눠줘 월급 이외에 회사의 이익을 나눠가졌습니다. 예상치 못했던 사람을 요직에 쓰는 경우도 많았어요. 작은 의료기기 개발 책임자가 하루 아침에 GE의 주력 사업 책임자가 되기도 했지요.

또 놀라운 것은 기록을 남기는 웰치 회장의 습관이에요. 머리에 문득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라도 중요한 것은 꼭 메모를 해 뒀답니다.

밥 먹다가 냅킨에 적어놓은 적도 많았지요. 웰치 회장은 이 같은 메모가 개인은 물론 GE를 위해서도 중요한 자료라고 생각해 버리지 않았답니다. 초기 회사의 구조조정은 부인과 식사 중 냅킨에 적어 놓은 메모가 근간이 됐어요.

신한종합연구소의 김홍익 경영연구실장은 "잭 웰치 회장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갖고 조직 구성원을 결집시켜 목표를 달성시키는 법을 알았던 진정한 경영자"라고 평가했어요.

이재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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