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 비밀 병기’ 김재성, 그를 키운 3가지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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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대표팀의 미드필더 김재성(가운데·13번)이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영국 축구전문지 월드사커 5월호가 선정한 ‘남아공 월드컵의 주목받지 못 한 영웅’으로 뽑혔다. 사진은 지난 16일 열린 에콰도르와의 평가전 장면. [중앙포토]

김재성(27·포항 스틸러스)은 허정무 감독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한국 축구의 비밀 병기다. 지난 1월 9일 잠비아전으로 A매치에 데뷔한 김재성은 라트비아전(1-0 승)과 일본전(3-1 승)에서 잇따라 골을 뽑으며 주목받았고, 마침내 남아공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영국의 축구전문지 월드사커 5월호는 남아공 월드컵 32개 본선 진출국의 주목받지 못한 영웅(unsung heroes) 중 한 명으로 김재성을 꼽았다. 고교 시절 컨테이너 박스에서 생활하며 눈물 젖은 빵을 먹기도 했던 그는 고교 3년 선배 박지성(맨유)이 선물한 나이키 축구화를 신고 국가대표를 꿈꿨다. 그리고 드디어 박지성과 함께 월드컵에 나선다.

◆박지성을 잊지 못하는 남자=수원공고 시절 김재성은 아버지의 식당 사업이 실패하면서 축구부 합숙비도 내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다. 하루하루가 힘겹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아버지의 눈물과 박지성의 선물이었다.

김재성의 아버지는 어느 날 밤늦게 집 근처 편의점으로 그를 불렀다. 술을 마시던 아버지는 “더 좋은 여건에서 운동하게 해 주고 싶은데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김재성도 눈물을 삼키며 ‘축구로 반드시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느 날 올림픽 대표로 뛰던 박지성이 모교를 찾았다. 후배들과 함께 훈련한 뒤 박지성은 김재성에게 나이키 축구화를 선물했다. 시장에서 파는 싸구려 축구화를 신던 김재성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다. 그는 “그 축구화만 1년 넘게 신은 것 같다”며 “그때 지성이 형이 얼마나 크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지금 대표팀에서 함께 훈련한다는 자체가 엄청난 영광”이라고 말했다. 2005년 프로축구 부천 SK에 입단한 그는 돈을 모아 사업 실패로 잃은 예전 아파트를 부모님께 사 드렸다.

김재성이 수원공고 2학년 때 쓴 일기. 훈련 내용과 감독의 지시 사항을 그림까지 그려 꼼꼼하게 메모했다.

◆일기 쓰는 남자 김재성=부천과 제주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2008년 포항 유니폼을 입었다. 하지만 파리아스 감독은 좀처럼 출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참다 못한 김재성은 통역을 통해 파리아스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김재성은 “그때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준비가 됐는데 왜 감독님이 기회를 주지 않는지 정말 궁금했다. 혼나는 건 아닐까 걱정하며 감독실에 들어갔다”고 회고했다. 파리아스 감독은 그의 얘기를 경청했고, 이후 출전 기회를 줬다. 김재성은 지난해 포항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 주역으로 활약했다.

김재성에게는 또 하나의 보물이 있다. 능곡초등 5학년 때부터 써 온 일기장이다. 두꺼운 노트로 6권이나 된다. 그는 “일기를 버린 줄 알았는데 어느 날 보니 어머니가 다 모아 두셨더라. 시간이 나면 가끔 중·고교 때 일기를 보는데 부끄럽기도 하지만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된다”고 말했다.

가장 최근 쓴 일기는 남아공 월드컵 예비 엔트리가 발표된 4월 30일. 그는 ‘명단이 발표되고 30초만 좋았다. 걱정과 부담으로 머리가 복잡해졌다’고 적었다. 16일 에콰도르와 평가전 때 오른쪽 날개로 선발 출전한 그는 전문가들도 놀랄 만큼 맹활약을 펼쳤지만 후반에 발목을 다쳤다. 목발을 짚고 열흘간 재활해야 하지만 표정은 밝다. 그는 “조급하지는 않지만 빨리 회복해 월드컵을 준비하고 싶다”며 “한·일전 후반 교체 투입될 수 있도록 몸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종력 기자

◆ 김재성

▶ 1983년 10월 3일 ▶체격=1m80cm, 70kg ▶포지션=미드필더
▶출신학교=능곡초·중-수원공고-아주대(중퇴) ▶A매치=7회(2골 ·1도움)
▶별명=표범·영일만 지단·졸라맨 ▶좋아하는 선수=프랭크 램퍼드(첼시)
▶보양식=오리 ▶종교=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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