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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카불] 압둘라 북부동맹 외무장관 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지난달 29일 오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시내 외무부 청사의 정문이 모처럼 열리면서 압둘라 압둘라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북부동맹) 외무장관이 탄 군청색 벤츠가 시야에 들어왔다.

압둘 카심 파힘 국방장관과 함께 차에서 내린 그는 여섯명의 무장 경호원에 둘러싸여 본관 2층 집무실로 올라갔다.

와킬 압둘 무타와킬 탈레반 외무장관(미군 공습 초기에 사라진 이후 아직까지 생존 여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이 쓰던 응접실에는 코란 구절이 새겨진 커다란 목판이 걸려 있고, 탁자와 의자들은 카불 시내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고급품이었다.

탈레반이 카불에서 일제히 퇴각한 다음날인 지난달 14일 북부동맹의 본거지인 판지실 계곡에서 내려온 압둘라 장관은 "요즘 시간이 없어 기자들을 자주 만나지 못해 미안하다"고 입을 열었다.

그의 어깨와 목소리에는 두달 전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에서 탈레반과의 전투 상황을 전할 때와는 달리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독일 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정파간 회의에서 이렇다 할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는데.

"정파간에 이견이 노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의가 결렬될 수준은 아니다. 시작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긍정적으로 봐달라."

-안정된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유엔과 국제사회의 중재로 과도정부가 수립되면 3~4개월 안에 로야 지르가(아프가니스탄 전통 종족회의)를 열어 약 2년 시한의 임시정부를 만든 뒤 총선을 통해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과도정부의 지도자는 누가 맡아야 하나. 북부동맹을 이끌어온 부르하누딘 라바니 대통령이 적임자인가.

"과도정부의 수반은 아프가니스탄인이면서 동시에 이번 전쟁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인사여야 한다. 그래야만 새로운 국가 건설이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다."

-1992년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정권이 들어섰을 때처럼 종족간.정파간 알력으로 내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과거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우리는 내전에 휩싸여 엉뚱한 세력(탈레반을 지칭하는 듯)에게 국토의 대부분을 빼앗긴 경험을 갖고 있다. 우리가 탈레반을 몰아낸 뒤 아직까지 종족간.정파간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없지 않은가."

-미군 또는 미국 정부 대표가 곧 카불에 들어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아직 일정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이르면 다음주에도 현실화할 수 있다."

-며칠 전 러시아 무장병력이 카불 시내에 막사를 만들었다. 10년 동안 옛소련과 싸운 무자헤딘들로 구성된 북부동맹이 이를 용인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민이 많다.

"그들은 러시아 비상사태부 소속 요원들이지 정식 군인은 아니다. 이들은 카불 주재 러시아 대사관 재건축과 의료시설 건설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왔을 뿐이다. 소련은 오랜 기간 북부동맹을 도와왔다."

-한국도 이번 전쟁에 의료.병참 분야에서 지원을 약속했는데.

"한국 정부와는 아직까지 어떤 외교적 접촉도 없었다. 우리는 이번 전쟁뿐 아니라 전후 복구와 국가재건 사업 과정에서도 한국의 협력을 환영한다."

그는 "한국에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말로 30여분간의 회견을 마친 뒤 곧바로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CNN 보도진을 맞아들였다.

이상언 특파원

*** 압둘라는

북부동맹의 대외 창구 역할을 맡고 있는 압둘라 외무장관은 요즘 카불의 외신기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타지크족 어머니와 파슈툰족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카불에서 의대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런던에서 6개월간 영어연수를 받은 게 외국생활의 전부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1997년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 북부동맹이 북부지역으로 쫓겨나기 이전의 정치적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북부동맹 내 최대 정파인 자미아트-이-이슬라미(이슬람회의) 소속. 지난 8월 암살된 북부동맹의 아메드 샤 마수드 장군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아프가니스탄 새 정부 구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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