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한이 지금 이럴 때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북한의 최근 대남(對南)태도가 심상치 않다.북한은 9.11 테러사태에 따른 우리의 비상경계조치를 빌미로 남북대화 채널을 사실상 닫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일종의 무력시위와 대남 비방전을 재개한 듯한 국면을 조성하고 있다.북한의 이런 움직임이 고도로 계산된 정책에서 비롯된 것인지, 우발성이 개재된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그러나 북한의 그런 행위가 남북 화해국면의 창출을 집권의 최고 목표로 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마저 실망감을 공개적으로 표출토록 했다는 데서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나고 있다.

북한은 대화국면을 경색상태로 몰면서 우리측 홍순영 수석대표를 특정해 6차 장관급 회담의 결렬 책임을 전가하는 비방전을 펴고 있다.

북측이 협상결렬에 따른 내부적 수요를 위해서나,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남측에 대한 반발심에서 그럴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장충식 전 한적(韓赤)총재의 전례를 참작할 때, 북측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우리 수석대표를 낙마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런 비난을 계속한다는 관측도 가능하다.

그 의도가 어느 쪽에 있든 북측은 협상의 기본 규범조차 무시하는 오만과 오산을 빨리 버려야 한다. 협상이란 서로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지, 일방의 수요만 만족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金대통령이 오죽했으면 최근 잇따라 "햇볕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남북관계에 대해)실망은 했지만 결코 절망하지는 않는다"고까지 천명했을까를 북측은 깊이 헤아려야 한다. 더구나 수석대표의 낙마 같은 일은 북측이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게 옳은 자세일 것이다.

또 북한군이 비무장지대에서 조성한 돌발상황들이 이러한 대남비방과 궤를 같이하는 것인지도 주목된다. 북한군은 호주 등에 군사정전위 유엔사측 대표에서 철수토록 종용했는가 하면, 우리측에 있지도 않은 비무장지대 내 곡사포 배치 등을 비난했다. 북측은 또 군사분계선을 침범했고 비무장지대에서 우리군 초소에 총격을 가했다.

특히 북측이 총격사태의 진상규명을 위한 양측 군사정전위 비서장급 회담을 열자는 우리측 전통문의 접수조차 거부한 것은 우발성 실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해석을 낳게 한다.

북측이 의도적이든, 우발적이든 모호함 속에서 우리측을 떠보려는 속셈에서 그런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것 또한 남쪽에서 먹혀들지 않을 것임을 직시해야 한다. 대화국면을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온 우리 국방당국이 급기야 대북 항의성명을 왜 발표했는지를 보면 금세 드러난다. 여당마저 북측을 비판하는 상황이다.

북한은 대남 경색국면을 조성해 얻는 이득이 과연 무엇일까를 성찰해야 한다.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이 탄력을 얻어 북측의 경제난을 완화하고 한반도의 화해국면을 조성하기를 북측이 진실로 원한다면 대남비방을 중단하고 군사행동에 대한 사실규명에 응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대남 공세국면을 펼 때가 아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