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비 70만원 받고 중고폰 주는 아이폰의 황당한 A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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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성모(32)씨는 요즘 아이폰만 보면 가슴이 쓰리다. 성씨는 지난 2월 초 아이폰을 샀었다. 최고의 스마트폰을 쓴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최근 전화기를 떨어뜨려 아이폰이 크게 부서지기 전까지는.

공식 AS센터는 수리 요금으로 75만6000원을 요구했다. 새 핸드폰 가격(94만6000원)의 80%에 달하는 금액이다. 수리를 맡기더라도 2주 뒤에 받게 될 폰은 원래 자신의 폰이 아니라고 했다. 누군가가 고장나 맡긴 폰을 고쳐서 주는 이른바 ‘리퍼폰’이다. "95만원짜리 폰을 75만원주고 고치는 법이 어디있느냐"고 따졌지만 소용이 없었다. 성씨는 “결국 수리를 못하고, 통신사에서 지급한 임대용 휴대전화를 쓰고 있다”며 “사설 수리업체를 찾아가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이폰 AS 정책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빗발치고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의 소비자상담센터에 이달 7일까지 접수된 소비자 불만 중 아이폰 관련 불만은 41건. 단일 통신 기기로는 가장 많다. 대부분의 고객들이 AS를 문제로 꼽았다. 비싼 수리비용, 중고폰 교체 정책 등이다.

아이폰의 수리 비용은 국내 다른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비하면 월등히 비싸다. 일단 수리 비용 산정 기준이 완전히 다르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교체 부품의 단가에 공임을 더해 수리 비용을 매긴다면, 아이폰은 고장 유형에 따라 수리 비용이 고정돼 있다. 배터리 교체는 10만8182원, 가벼운 수리(부분 수리)는 일괄적으로 26만4000원이다. 이 외에 ‘전체 수리’ 대상으로 분류되면 용량에 따라 52만~75만6000원으로 가격이 획일화돼 있다. 새 제품 가격의 80%에 달하는 금액이다.

보통 수리비가 10만원 이하인 국내 휴대전화에 익숙한 소비자들은 불만을 토로한다. 아이디가 ‘myminei’이라는 네티즌은 한 포털사이트 게시판에 “이어폰 잭에 작은 케이블 조각이 들어가있어 이를 빼내달라고 했더니, 27만원을 달라고 하더라”며 “KT에 항의했더니 ‘애플과 해결보라’고만 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리퍼폰을 지급하는 정책도 국내 소비자에게 반감을 산다. 새것처럼 고쳤다고는 하지만, 남이 사용했던 휴대전화를 받는다는 것이 찜찜하다는 것이다. 최근 소비자 상담센터에 불만을 접수한 직장인 손모씨는 “구입 직후부터 상대방 목소리가 안 들려 수리를 요구했는데, 리퍼폰을 준다더라”며 “살 때부터 결함이 있었는데, 새 폰도 아니고 중고폰을 받는다는 게 기분 나쁘다”고 말했다.

아이폰 제조업체인 애플 측은 “한국 소비자의 불만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AS 정책을 바꿀 생각은 없다”는 입장이다. 애플 코리아 박정훈 부장은 “리퍼폰이 중고폰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문제가 있는 부품은 대부분 갈기 때문에 새 폰이나 다름 없다”며 “쓸 수 있는 부품을 활용하자는 정책이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비싼 수리 비용에 대해선 “국내에 제조 라인이 없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국내 아이폰 공식 판매업체인 KT의 홈보팀 함영진 대리는 “국내 휴대전화는 국내에 제조 라인이 있어 수리 비용이 적게 들지만, 애플은 대만ㆍ중국에 제조 라인이 있기 때문에 운송 비용 등이 더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함 대리는 "애플의 AS 정책을 우리가 변경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고객들이 폰을 구입하기 전에 이 정책을 꼼꼼히 알림으로써 피해를 최소화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미진ㆍ선승혜 기자

☞리퍼폰=리퍼비쉬드 폰(refurbished phone)의 준말. 중고 휴대전화를 새것처럼 수리한 제품으로, 애플은 아이폰 고장이나 분실 시 새 아이폰 가격의 80%를 받고 리퍼폰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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