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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카불] "5년만에 맘대로 입고 걷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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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알라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

낭랑한 노랫가락인 양 멀리서 들려오는 독경(讀經)소리에 눈을 떴다. 오전 3시. 기도시간을 알리려고 이슬람 사원 성직자가 코란을 낭송하는 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전해져 왔다.

사위는 아직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이슬람 사원에 모인 카불 시민은 알라를 향한 간절한 기도로 라마단(이슬람 금식월)의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탈레반 세력이 물러간 지 13일째인 25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아침은 그렇게 밝아 왔다. 햇살은 따사롭고, 거리는 평온하다. 여기가 2주 전만 해도 미군의 폭격 속에 결사항전을 외치던 탈레반의 수도 카불이란 말인가.

전날 오후 카불에 도착할 때까지의 상황은 긴장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타지키스탄 수도 두샨베를 출발한 러시아제 헬기는 눈덮인 힌두쿠시 산맥을 넘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래로는 아프가니스탄의 험준한 산하가 끝도 없이 펼쳐졌다. 동승한 미국.독일.일본 기자들 모두 말이 없었다. 카불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맞아줄 것인가.

헬기에서 내린 우리 일행 11명을 태운 도요타 픽업 트럭들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산속으로 이어진 비포장 도로를 겁도 없이 달렸다. 탈레반군이 남기고 떠난 부서진 차량과 탱크가 드문드문 눈에 들어왔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며칠 전 남부 잘랄라바드에서 카불로 가던 서방 기자 네명이 피살됐다는 불길한 소식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러나 힘겹게 도착한 카불은 더 이상 전쟁의 도시가 아니었다. 간간이 북부동맹 병사들을 태우고 달려가는 트럭과 삼삼오오 무리지어 거리를 순찰 중인 소총을 멘 병사들만 아니라면 이곳이 전쟁 중인 국가의 수도라고 믿기 어렵다.

각종 가게가 즐비한 도심 번화가인 만데리 거리는 아침부터 행인들로 붐볐다.

수염을 깎고 머리를 다듬기 위해 이발소를 찾은 사람, 몇년 동안 깨지고 부서진 채 방치돼 있던 집을 수리하기 위해 공구와 건축자재를 사러 나온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하게 이어졌다.

"탈레반 치하에선 사람들의 통행이 거의 없었어요. 종교경찰이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의 복장이며 동향을 감시했고 운이 나쁘면 그들에게 끌려가 두들겨 맞기 일쑤였어요. 이 거리를 이렇게 마음대로 걷게 된 건 거의 5년 만입니다." 말끔하게 수염을 밀어버린 샴슈딘 샴스(46)는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카불 거리를 안내했다.

바로 옆의 조디 마이완 거리. 4차선 넓이의 도로에 중앙선도 그어져 있지 않고 곳곳에 포장이 파여 흙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노란색 택시와 자전거들이 뒤섞여 도로 위로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바쁘게 달려간다.

카불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일 뿐 더 이상 전쟁터가 아니다. 주민들은 트럭으로 땔감용 나무를 실어나르고 자전거로 연통을 옮기는 등 월동준비에 분주했다. 양 한 마리를 통째로 걸어놓고 파는 정육점과 자동차 부품을 파는 상점들도 간간이 눈에 띄었다. 노점상 가운데는 펩시콜라나 네슬레 초콜릿 등 미국제 기호품을 파는 곳도 있었다.

카불대학 출신의 통역 하미드 샤합(24)은 "탈레반이 이 도시를 버리고 물러난 뒤의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의 말수가 늘어난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한다. 남성들은 어느새 대부분 긴 수건을 말아 머리에 두르는 탈레반식 복장을 던져버리고 납작한 '파쿨'이나 얇은 '굴라' 등 아프가니스탄 전통 모자를 쓰고 있었다.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수염을 깎고 맨 턱을 드러내고 다녔다.

사람들이 무엇보다 기뻐하는 건 탈레반 군인 가운데서도 가장 악명 높았던 외국 자원병들이 물러갔다는 사실이다. 샴스는 "카불 시민들을 억압하던 이방인들에 대한 거부감이 많았다"면서 "이들은 북부동맹이 밀려오면서 대부분 남부 칸다하르와 북부 쿤두즈 쪽으로 달아났다"고 말했다.

치안도 비교적 엄격히 유지되는 편이어서 우려했던 보복과 약탈 행위는 일어나지 않고 있다. 탈레반 소속 운전기사였던 무하메드 자메르(35)는 "상당수의 탈레반 협력자들은 칸다하르로 달아났다.

나도 탈레반 부역자로 낙인 찍혀 보복당하는 것이 두려워 그들을 따라 피신할까 생각했지만 여기가 고향이라 그냥 남았다"며 "동네 사람들의 눈길이 곱지는 않지만 그래도 위협을 느끼는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미군의 공습을 피해 피란 행렬에 올랐던 주민들도 속속 카불로 되돌아오고 있다. 이들은 주로 카불 시내 북쪽 탈레반 기지 근처에 살던 사람들로 1만여명이 인근 산악지대나 국경 쪽 난민촌으로 피신했었다.

시내 북쪽에는 아직도 탈레반 잔당들이 남아 있다. 시장에서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메르조딘(40)은 지난주 땔감을 구하러 카불 북쪽 15㎞ 거리에 있는 샤카르다라산(山)에 갔다가 탈레반 병사 10여명이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고 전했다. 메르조딘은 "탈레반 병사들이 풀과 나무 뿌리로 연명하며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북부동맹이 카불을 장악했다지만 종족간 반목이 여전한 이상 유혈사태가 재발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우려를 샴스는 일축했다. "예전엔 서로 죽고 죽이고 했지만 이젠 그렇지 않을 겁니다. 오랜 내전을 거치며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한가지 터득한 게 있어요.

누가 카불의 점령군으로 오든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제일 안전하다는 것이죠. 카불에 사는 파슈툰족이 타지크족인 북부동맹을 환영하는 것도 내전을 통해 터득한 생존의 지혜라고나 할까요."

'물과 꽃이 많은 낙원'이라는 뜻의 도시 카불은 긴장 속에서도 조심스럽게 일상의 자유를 되찾고 있었다.

카불=이상언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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