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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정통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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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인섭 사진부 기자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사건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이 사건은 디지털 세대가 아날로그 세대를 상대로 벌인 '기습공격'이다. 설마 설마 하다가 한 방 먹은 셈이다.

2000년 휴대전화가 급속하게 보급되던 당시 극장이나 도서관.교회 등에서 울리는 벨 소리가 문제가 됐다. 휴대전화 사용 에티켓이 도마 위에 오르자 조심스럽게 전파차단기 도입 문제가 거론되고 공청회도 잇따라 열렸다. 당시 거센 벤처 열풍에 힘입어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전자기기 제조업체인 (주)소렉을 비롯, 4~5개 업체가 전파차단기 개발에 들어가 제품이 생산됐다. 당시 업체들이 추산한 국내시장 규모는 7500억원 정도였다.

그러나 정통부는 전파통신법 50조 '누구든지 전기통신설비의 기능에 장해를 주어 전기통신의 소통을 방해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와 전파법 82조 '무선설비의 기능에 장해를 주어 무선통신을 방해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는 규정 등에 의해 전파차단기 설치는 물론 판매까지 금지시켰다.

졸지에 7000억원이 넘는 시장이 사라진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해외시장 개척에 성공한 ㈜소렉을 제외한 나머지 업체는 도산했고 당시 생산된 제품들은 인터넷을 통해 불법으로 유통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시 부정사건이 터지자 22일 국회에 출석한 진대제 정통부 장관은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휴대전화 전파차단장치의 운용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며 "교육인적자원부와 협의해 모든 시험장에 휴대전화 차단장치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파차단기의 설치를 엄격하게 막다가 수능 부정사건이 터지자 그제서야 한 발짝 물러선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디지털 세상이다. 당국은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도록 관련법 규정에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개정할 것은 개정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야 한다. 애써 개발한 첨단 제품이 '아날로그 시대 법'에 묶여 사장되고 생산업체가 도산하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다.

신인섭 사진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