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칠궁' 33년만에 열려… 7명의 사친 위패 합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조선시대 후궁(後宮)의 신분으로서 후에 임금에 오른 이를 낳은 사람은 사친(私親)이라고 불렸다.

정비(正妃)의 소생이 아닌 왕이 즉위했을 경우 자신을 낳은 생모를 소홀히 할 수 없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왕들은 종묘가 아닌 별도의 장소에서 어머니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다.

이렇게 조선시대 왕들이 후궁 출신의 생모 위패를 모신 곳이 청와대 서남쪽에 자리잡은 ‘칠궁(七宮)’이다.

1968년 김신조 일행의 청와대 습격사건(1.21사태)이 발생한 이후 경비 상의 이유 때문에 일반인들의 발길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칠궁이 지난 24일부터 공개됐다. 정부의 '열린 청와대' 정책의 일환으로, 청와대 관람객에 한해 이 장소를 구경할 수 있도록 했다.

칠궁 자리의 정식 명칭은 육상궁(毓祥宮)으로 사적 제149호다. 전체 7천8백15평이며 청와대 영빈관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원래 숙종(肅宗)의 후궁이자 영조(英祖)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모셨던 곳으로, 처음에는 '숙빈묘(肅嬪廟)라고 불렀다가 영조 20년(1744년) '육상묘(毓祥廟)'로, 9년 뒤에 다시 육상궁으로 고쳐져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합사와 '칠궁' 이름의 탄생=육상궁이 고종 19년(1882년) 화재로 불에 탄 뒤 1908년 서울 주변에 흩어져 있던 여러 사친묘를 한데 모아 합사(合祀:공동으로 제사지냄)키로 함에 따라 숙빈묘 외에 5개의 사친묘가 옮겨 왔고, 마지막으로 1929년 고종의 후궁이며 영친왕(英親王)의 생모인 순헌귀비(純獻貴妃) 엄씨의 덕안궁(德安宮)이 들어 오면서 칠궁이 됐다.

숙빈의 육상궁과 엄씨의 덕안궁 외에 영조의 후궁인 정빈(靖嬪) 이씨의 연호궁(延祜宮), 선조의 후궁인 인빈(仁嬪) 김씨의 저경궁(儲慶宮), 숙종의 후궁이자 경종(景宗)의 생모인 희빈(禧嬪) 장씨(장희빈)의 대빈궁(大嬪宮), 영조의 후궁이자 나중에 왕으로 추존된 장조(莊祖)의 생모 영빈(暎嬪) 이씨의 선희궁(宣禧宮), 정조(正祖)의 후궁이며 순조(純祖)의 생모인 수빈(綏嬪) 박씨의 경우궁(景祐宮)이 들어서 있다.

▶칠궁 배치=일곱개의 사친묘 가운데 선희궁과 경우궁, 육상궁과 연호궁은 각각 한 건물에 같이 위패를 모셨다. 따라서 제사를 지내는 사친묘 건물은 모두 다섯 동이며 이밖에 제사용 물을 길었던 우물 '냉천(冷泉)'과 정자가 있다.

가장 앞쪽에는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준비하고 사람들이 대기했던 재실(齋室)이 날렵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재실 뒤편으로 사친묘를 들어설 때는 내삼문(內三門)을 거치도록 돼 있고 외부에서 재실 쪽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외삼문(外三門)을 거쳐야 한다.

▶눈여겨 볼 점=육상궁을 둘러싼 외벽에는 하늘의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상징하는 문양들이 촘촘히 새겨져 있고 육상궁 정문의 단청과 모양새에도 제사 지내는 곳으로서의 특징이 담겨 있다.

칠궁 가운데에 있는 냉천정과 주변 뜰은 소박한 아름다움이 배어나는 전통적인 한국 정원의 면모를 보여준다.

육상궁은 원래 무수리(궁녀)출신인 어머니에 대한 영조의 효심이 깃들인 곳으로 그와 손자 정조의 어진을 현재의 냉천정에 봉안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칠궁은 재실을 비롯한 전체 건축물의 배치 등을 통해 종묘와 더불어 조선시대 묘사(廟祀)제도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장소로 꼽히고 있다.

유광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