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속엔 삶의 지혜 담겨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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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동원초등학교 빛과 소금 도서관에서 인문학 읽기 프로그램이 열려 신득렬 전 계명대 교수와 학부모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사람은 두 부류, 감성적인 사람과 지적인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굉장히 지적입니다. 스핑크스 수수께끼를 풀었을 정도니까요. 지적인 사람은 좀체 신념을 바꾸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됩니다. 한번 틀어지면 회복이 어려워져요. 여러분 남편은 어떤 쪽인지 생각해 보세요.”

“제 남편은 정말 고집이 센데… 지적인 사람인가 보죠?”

12일 오전 대구시 수성구 만촌동 동원초등학교 도서관. 서양 고전 읽기 운동을 벌이는 신득렬(66·교육학 박사) 전 계명대 교수의 설명에 어머니 11명이 밑줄을 긋고 받아 적다가 “남편을 알아 보라”는 말에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독서모임 연리지 회원들이 이날 읽고 토론한 책은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천병희 옮김). 요약본이 아닌, 512쪽짜리다. 책 제목과 두께를 보면 선뜻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다. 이날은 세 번째 토론 모임이다. 일주일 동안 70여 쪽 분량을 읽고 수요일마다 신 박사의 설명을 들은 뒤 토론한다. 이 책은 7편으로 구성돼 있어 일곱 차례 모일 계획이다.

신 박사는 2400년 전에 쓴 비극을 왜 읽어야 하는지 다시 설명했다. “오이디푸스 같은 비극의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반면교사로 삼으라는 것이죠.”

회원 하영미(40)씨는 “처음엔 어렵게 느껴졌는데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재미를 붙여 두세 시간이면 70쪽을 읽는다”며 “남편과 그리스 신화를 만화로만 본 고1 딸이 대하는 눈빛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지식인이나 대학생의 전유물이던 인문학이 학부모 속으로 파고들고 있다. 대구 동부도서관과 신득렬 박사가 운영하는 파이데이아는 올 들어 시민들과 같이 ‘위대한 저서’라는 서양 고전 읽기 운동을 펴고 있다.

학부모 독서동아리는 지난달부터 동원초교 등 8개 학교에서 115명이 동시에 참여하고 있다.

신 박사는 “인류에 변함없이 지혜를 전하는 게 고리타분한 인문학의 매력”이라며 “독서의 질이 변해야 성숙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송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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