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새로운 보수와 새로운 진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최근 들어 '보수 되살리기'에 부쩍 힘이 실리고 있다. 일부 지식인은 '자유주의 연대'를 발족시켰고 종교인 여럿에 의해 '기독교 사회책임'이 출범하기도 했다. 사실은 그 이전부터 학계와 법조계, 시민단체와 인터넷 미디어, 혹은 정치권 영역에서 이와 비슷한 조짐이 감지돼 왔다. 그 결과 일각에서는 이와 유사한 흐름을 한데 묶어 '뉴 라이트(New Right)'라고 하기도 한다.

이른바 '뉴 라이트 운동'의 입지는 현존 진보세력을 '수구 좌파'로, 그리고 기성 보수세력을 '수구 우파'로 비판하는 것에서 발견된다. 여기서 '뉴 라이트'와 진보 좌파그룹의 차별성은 일단 놀라운 일이 아니다. 주목할 대목은 기존 보수 우파이념에 대한 '뉴 라이트'의 차별화 문제다. 소위 '올드 라이트(Old Right)'에 대해 내세우는 세대적 신선도나 도덕적 우위성은 당연한 만큼 그 자체로서는 큰 강점이 아니다. '뉴 라이트'의 성공 여부는 따라서 그릇의 크기나 재질이 아니라 그것에 담길 내용에 달려 있다.

이런 점에서 '뉴 라이트'는 한국적 보수의 완성이 아니라 출발에 불과한 것이다. 정치사상의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보수라기보다 '최초의' 보수라고 봐야 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보수이념은 국가와 정치체제, 남북관계, 냉전체제 등에 의해 줄곧 '주어진' 것이었다. 그리하여 반공과 친미 혹은 개발독재가 보수의 전부인 양 인식돼 왔던 것이다.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에서 보수이념이 자발적 또는 자생적으로 진지하게 고민됐던 기억이 실로 빈약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감안하면 '뉴 라이트' 운동에 대한 기대는 결코 가벼울 수 없다.

'뉴 라이트'가 단순한 '오른쪽'운동이 아니라 '옳은 쪽'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의 지성적 초심과 이성적 기반을 견지해야 한다. 무조건 반노(反盧)가 옳은 길은 아니다. 스스로 정치세력으로 성장하는 것 역시 반드시 옳은 길은 아니다. 숟갈 들고 찾아오는 수구 보수 세력과 무차별적으로 악수하는 것은 더더욱 옳은 길이 아니다. 운동의 중심 무대는 학문과 교육, 그리고 문화 영역에서 결코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이 시대 '뉴 라이트' 운동이 사상적 실패나 철학적 좌절로 끝난다면 그것은 보수이념 자체의 끝이 될 공산이 크다.

'뉴 라이트'운동의 성공은 단순한 보수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차피 보수와 진보가 공존하고 서로 경쟁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라면 '뉴 라이트'를 통째 사갈시(蛇蝎視)하려는 이른바 '수구 좌파'의 닫힌 시각은 따라서 답답하고 한심하다. 오히려 차제에 필요한 것은 자칭 진보세력 역시 이념적 재정비를 서두르는 일이다. 한국의 진보가 구사하는 화려한 말의 성찬에도 불구하고 집권 2년이 다 되도록 비전 부재와 정책 혼란에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면 그들 역시 속은 텅 빈 존재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보수와 진보가 이념적으로 성숙하고 지성적으로 대면하려면 '뉴 라이트'에 대적하는 카운터파트가 나와야 한다. 보수에 대한 저주나 기득권에 대한 증오가 곧 진보이념은 아니다. 그리하여 지금쯤은 한국의 진보 역시 '광주'로부터 독립하고 1980년대에서 해방돼야 한다. 자칭 진보세력은 폭넓게 확보한 대중성의 이면에 드리워진 지적 왜소화와 기형화를 싫어도 이제는 읽어야 하는 것이다. 미래가 아닌 과거에 집중하고, 통합이 아닌 분리에 집착하는 한 희망이 없는 쪽은 보수가 아니라 차라리 진보 쪽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작금의 '뉴 라이트' 운동은 한국의 이념논쟁이 생산적으로 내실화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보수와 진보 양쪽에 모두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갈망하는 것은 제대로 된 '이념의 재구성'이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