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야스쿠니 참배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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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본 경제계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順一郞.사진)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비판하고 나섰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해온 재계가 참배를 비판한 것은 중.일 관계 경색이 계속되면 경제 교류에도 영향을 미쳐 일본의 국익을 해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대표적 민간 경제단체 중 하나인 경제동우회 대표간사 기타시로 가쿠타로(北城恪太朗)는 24일 기자회견에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야스쿠니 참배는 자제했으면 하는 게 경제계의 다수 의견이라고 본다"며 참배 중단을 촉구했다.

정부와의 화합을 중요시하는 일본의 경제단체 대표가 공개적으로 총리의 처신을 비판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기타시로 대표간사는 이날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비판을 언급하면서 "중국에는 A급 전범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총리가 참배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는 국민감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총리의 참배가)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와 일본 기업의 활동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일본 기업인이 다수 포함된 '신 일.중 우호 21세기위원회'는 지난 9월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 지향적인 일.중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정책 제언을 발표했다. 발표문에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으나 위원회 좌장인 고바야시 요타로(小林陽太郞) 후지제록스 회장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총리가 참배를 중단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고바야시 회장은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중국의 국민감정을 거스르고 양국 정상회담 개최에도 방해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일본의 경제계 관계자는 "재계에선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불만이 많다"며 "역사 인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일본의 국익을 생각하면 참배를 중단해야 한다는 게 재계의 여론"이라고 설명했다. 경제계는 또 경색된 양국 관계로 인해 베이징(北京) ~ 상하이(上海) 간 고속철도 수주 경쟁에서 일본이 선정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전무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한편 지바(千葉)지방재판소는 25일 시민 63명이 고이즈미 총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참배는 총리의 자격으로 이뤄진 '직무 행위'로 봐야 하며 정부의 주장처럼 '사적 참배'라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정교 분리의 원칙을 위반한 데 대한 위자료 청구는 "원고들의 구체적 권리를 침해한 사실이 없다"며 기각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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