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자 돌려주오" 첫 소유권 소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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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외국에서 종종 일어나는 정자(精子)소유권 싸움이 국내에서도 벌어졌다.

병원에 보관해둔 정자를 찾아가려는 불임부부와 이를 거부하는 병원간의 분쟁이다.

"내 정자 돌려달라"는 단순한 요구지만 사건은 의외로 간단치 않게 전개되고 있다.

이 분야의 몇몇 전문병원들이 정액조직의 반출을 내규로 금한 상태라서다. 정액의 매매나 상업적인 대리모 출산을 금지한 의료관계법 때문이다.

무(無)정자증의 회사원 K씨(34.경기도 의정부시)가 불임클리닉 전문인 서울 S병원을 찾아간 건 지난해 여름. 결혼생활 7년간 네번의 시험관 인공수정을 모두 실패해 아이가 없는 K씨 부부다.

K씨는 이 병원에서 막힌 정관(精管)을 절개해 뚫고 다시 연결하는 수술을 받았다. 정자가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러면서 수술 실패에 대비, 정자와 정액조직 등을 추출해 병원에 냉동 보관시켰다.

"수술 후 1년이 지나도 여전히 임신이 안됐지요. 결국 다른 병원에서 다시 한번 시험관 수정을 하기로 하고 지난달 정자 반출을 요구했어요."

그러나 병원측은 즉각 거절했다. "현행법에 정자 등 세포.조직에 관한 규정이 없어 문제가 됐을 때 판정할 근거가 없는 만큼 내규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

S병원에선 몇년 전 불임시술을 받은 이스라엘 외교관이 귀국하면서 냉동 보관된 자기 수정란의 반출을 요구했지만 똑같은 이유로 거부한 바 있다.

이에 K씨 부부는 '명백한 소유권'을 내세워 17일 보건복지부에 S병원을 고발했다. 이어 법원에 정자 반환 소송도 내기로 했다.

K씨의 부인(34)은 "남편이 정자를 추출하려면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하나 1백만원의 비용도 문제고, 수술 성공률도 높지 않다"고 말했다.

분쟁을 보는 전문가들도 견해가 엇갈린다. 국내에 전례는 물론 관련 법규도 없는 상태라서다.

강원대 박동진(법학)교수는 "정자의 소유권 판단은 생명윤리와 연관돼 현행법만으로 쉽게 결론내리긴 힘들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의료법학회 전병남 변호사는 "정자나 수정란은 적출되기 전 소유자가 소유 의사를 포기하지 않는 한 친권(親權)을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면밀히 검토해 조치하겠다"고만 밝혔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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