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올 노벨 생리·의학상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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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올해의 노벨 생리-의학상에 하트웰.널스.헌트 3인이 수상자로 발표되었다. 이번 수상은 세포분열이라는 특정분야는 물론 우리 과학계의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세포는 성장할 때 혹은 사고로 손상되었을 때 재복구를 위해 그 수를 늘려나간다. 이때 세포는 1,2,4와 같이 대충 이분법적으로 분열하는데 1개에서 2개로 늘어나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을 세포주기라 한다.

피부가 찢어지면 주변의 세포는 분열을 시작해 새로운 세포를 만들지만 그 틈이 메워지면 분열을 중단한다. 우리 몸속에 병균이 침투하면 백혈구 숫자가 급속히 늘어나지만 이 외적을 격퇴하면 더 이상 증식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모두 정교한 정보시스템의 통제하에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분열을 하지 말아야 할 상황에서도 세포가 계속 분열하면 암이 된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은 세포분열에 대한 과학적인 개념을 제시했고 이에 관여하는 주요 단백질들을 밝히는 데 큰 공헌을 했다. 하트웰은 세포주기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1백여개나 분리해냈는데, 특히 분열 개시를 명령하는 유전자를 발견했고 세포분열 중 일어나는 실수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검문.검색'개념을 제시했다.

하트웰과 널스는 빵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효모를, 헌트는 주로 개구리나 성게의 알을 사용했다. 효모는 유전자 분석이 간편하고, 개구리알은 크기가 커서 미세 바늘로 특정 물질을 집어넣은 후 결과를 쉽게 분석할 수 있다.

이번 수상자들의 연구내용은 과학계 전반에도 교훈을 준다. 먼저 기초과학의 중요성이다. 효모나 개구리를 가지고 세포분열을 연구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게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것이 우리의 현주소다.

기초란 아주 먼 미래를 위한 고위험 투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무슨 프로젝트이건 단기적 응용성만을 강조하는 실용론자들이 새겨봐야 할 점이다.

이들 연구내용이 또 하나 시사하는 점은 기초와 응용의 벽이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대부분 매우 기초적인 연구분야에 종사했지만 그들의 결과는 20여년이 안돼 응용으로 연결되고 있다. 특히 좋은 기초연구일수록 강력한 응용성을 가지고 있다.

요즘 우리 학계에서는 기초와 응용에 관한 소모성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응용연구만이 실용학문이라고 주장하는 자나, 기초가 설 자리를 잃어간다고 불평하면서도 자기 학문의 중요성을 남에게 제대로 설득하지 못하는 사람들 모두 이번 수상의 내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수상자들이 모두 기초생물학에 종사하면서도 세계 유수의 암센터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다는 것은 우리 의학계가 배울 점이다.

우리 의학계는 기초분야에서조차 의대 출신이나 임상의사가 아니면 주류가 될 수 없고, 고급 연구인력들에 대해서는 환자 돌보기 바쁜 의사를 대신해 실험해주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풍토가 있어 기초의학 발전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생물의학이 21세기 바이오테크 분야의 가장 큰 축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반드시 개선돼야 할 점이다.

金善榮(서울대교수 ·유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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