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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장애 때문에 직장생활에 자신감이 없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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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외국계 기업에 다니고 있는 경력 5년차 직장인입니다. 직장문화에 상당히 적응을 한 상태고, 일도 비교적 잘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이 없는 것은 토론을 하는 겁니다. 회의가 자주 열리기도 하지만, 외국인 상사나 동료와 업무 협의를 수시로 해야 하는데, 우선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고, 뭔가를 계속 이야기해서 설득을 해야 한다는 것도 스트레습니다. 어학원도 열심히 다니고, 가끔 토론이나 스피치에 관한 책도 사서 읽어보는데, 정말 어렵습니다. 남들은 다 나보다 잘하는 것 같은데, 혼자만 뒤처지는 느낌이 들 때도 많고요. 토론장애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A : 토론장애는 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둡니다. 토론을 하라고 국회에 보냈더니 멱살잡이만 연출하는 국회의원부터 변호사비가 그렇게 비싼데도 고소고발을 일삼는 일반인까지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토론장애에 걸려 있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토론장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님뿐만이 아니니까 너무 외로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 직장인 대부분이 당신과 같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지낼 겁니다. 국내기업의 경우에 외국계 기업과 조금 다른 건 사실입니다. 아주 권위주의적인 문화를 가진 기업에서는 '입 닥치고' 일하는 것을 선호하기도 할 테고요. 그래도 회의 때 의사소통을 잘하는 건 장점임에 틀림없고, 또 모두들 그것을 힘들어하는 건 분명합니다. 조금 위안이 되셨나요?

자~ 토론이 활성화되지 않은 기업에서는 어떤 현상이 생길까요? 먼저, 필요한 논의꺼리에도 입을 다무는 경향이 생깁니다. 과묵하면 중간은 가니까요. 과묵이 미덕인 회사에서는 말 한마디 잘못해서 ‘킬’ 당하는 일도 흔하지 않습니까? 왜냐고요? 문제점을 지적하면 자신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뭔가를 지적하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우리 주위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난 어떨까?’ 라고 반문을 했을 때, ‘난 아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분, 별로 없을 겁니다. 개인적 성향의 차이려니 할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양성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창궐하는(?) 경향, 되시겠습니다.

사실 토론을 하는 이유는 좀 더 발전된 대안을 찾아내거나 합의를 도출하는데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어찌 결론은 났지만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거나, 서로 상처만 받고 헤어지거나, 복수의 의지만 키운 끝에 또 다른 대결로 이어지고 만다면, 곤란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의 토론장애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공공의 병’이라고 생각합니다.

님께서는 토론장애의 한 원인으로 영어도 언급을 했습니다. 님께 묻고 싶군요. 정말 영어가 문젭니까?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시는 분들이면 다 아시겠지만, 요즘은 다양한 나라 출신들과 어울려 일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자들이 모두 영어를 잘하던가요? 그것도 본토 발음으로? Oh, NO! 인도 출신은 힝글리쉬로 멕시코 출신은 스팽글리쉬로, 각자의 발음으로 영어를 하지 않던가요? 그러고도 정말 열심히 ‘씨불이지’ 않던가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영어실력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하려는 ‘의지’입니다. 이 의지만 강하다면, 영어발음이 조금 망가지는 따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그것도 본토 발음으로 ‘퍼팩트’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은 입을 잘 열지 않습니다.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과묵하게 만드는 또 다른 이유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 때문입니다. 이건 또 무슨 얘기냐고요? 처음에는 (발음과 내용을 달달 외워서) 발표를 잘 하더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별로 들을 내용이 없어지면서, 알아듣기도 어려워지는 현상을 말하는 건데요. 밑천이 금방 드러난다는 겁니다. 여기에서도 특히 문제가 되는 건 ‘내용’, 다시 말해 콘텐츠입니다. 영어야 조금 못해도 관계없습니다. 하지만 회의를 거듭할수록 알맹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건 아주 심각한 현상인 것이죠.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건 단편적인 사실과 공식만 달달 외운 것의 폐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지식과 정보의 깊이가 얕다보니, 대화를 오래하다 보면 밑바닥이 금방 보이게 되는 겁니다. 소설이나 역사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맥락을 이해해서 이야기하기는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한국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이 외국 대학에 가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중도 포기하는 일도 잦고, 글로벌 기업에 취직을 한 뒤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토론문화가 잘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계 CEO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점이기도 합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후세대 교육을 이렇게 하고 있다는 건, 다시 생각해볼 일입니다.

이야기가 교육으로 살짝 벗어나고 말았는데, 토론장애를 겪고 있는 직장인들에게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의사소통에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겁니다. 어차피 이야기가 시작된 김에 약간의 기술을 전수해드린다면, 토론을 하거나 발표를 할 때, 다시 말해, 말을 할 때는 언제는, ‘CSMM’을 기억하라는 겁니다.

첫째, 언제나 결론(Conclusion)부터 말하기 바랍니다. ‘내 생각은 이러이러 하다’고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고, 설명을 뒤에 붙이는 귀납적 접근법을 택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말할 경우에 장점은,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줄 수 있고, ‘그래서 결론이 뭔데’ 라며 채근을 당해 꼬리를 내려야 하는 민망한 순간을 피할 수 있고, 중간에 잘리더라도 유감스럽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전달력도 높아집니다.

둘째, 평소보다 약간 빠르게(Speedy) 말하라는 겁니다. 평상시에 이야기하듯이 무게 잡으시고 느릿느릿 말하면, 안 그래도 졸린 회의를 더 졸리게 만든다는 핀잔만 듣게 될 뿐입니다. 회의 때 평소보다 살짝 빠르게 접근하면, 듣는 이들도 긴장하게 만드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습니다. 나뭇가지 위에 늘어져 있던 치타가 사냥감에 접근할 때의 긴장감! 아시겠죠?

셋째, 도레미 ‘미(Mi)’ 톤으로 톤도 살짝 높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아나운서들 목소리 아시죠? 그들은 그렇게 교육을 받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좋은 톤은 ‘미’라고. 그래야 전달력이 높아진다고. 물론 이 경우에 긴장감도 더해진답니다.

넷째, 1분(Minute)에 대한 감각을 익혀두기 바랍니다. 왜 1분이냐고요? 여러분이 즐겨듣는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게스트들이 한 가지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는 시간이 대략 1분 정도입니다. 1분이 지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청취자들이 지루해합니다. 각종 선거의 TV토론에서도 질문 당 답변 시간은 1분 30초를 잘 넘지 않습니다.

이런 포맷에 길들여진 우리의 귀이기에 1분 이상의 긴 멘트를 지루해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인데, 일단 지루해지고 나면, 뭔 소리를 해도 ‘개소리’로 들리는 거 잘 아시죠? 확실히 전달력이 떨어지는 겁니다. 반면에, 1분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나면, 좋은 점은? (1)1분 단위로 끊어 내가 할 이야기의 분량을 조절할 수 있다 (2)TV나 라디오 인터뷰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3)꼭 ‘할 말만 한다’는 평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도 아직 완벽하게 소화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시사평론가로 방송을 하면서, 수많은 토론회에 참석해서 사회도 보고 발표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또 출마를 준비하는 정치인이나 공직에 진출하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터뷰 코칭을 하면서 실전체험으로 익힌 기술이니까 아마 도움이 많이 될 겁니다.

이런 기술을 어떻게 익힐 것인지 방법도 알려달라고요? 연습을 해야죠. 1분 스피치를 하고, 그것을 녹화해서 본 다음에 눈에 거슬리는 부분을 고쳐나가면, 도움이 많이 되는데요. 배우자더러 질문을 하라고 하고 답변을 해보는 식으로 연습하는 것도 아주 좋답니다. 미혼인 자들은 연습을 핑계로 작업을 건다면, 일거양득이 될 수도 있겠네요. 또 1분 분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워드로 쳐서 분량을 가늠해 두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되죠!

토론장애, 꼭 극복해서 행복한 직장생활을 누려보시기 바랍니다. ‘국민토론헌장’이라도 제정해야 할까나?

이종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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