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김 감독을 흔들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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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아, 한국야구의 대표감독은 역시 그 사람이구나."

한국야구에 관심이 있는 외국의 야구팬이라면 올해 야구월드컵대회의 감독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착각할지 모르겠다. 대회 안내 책자를 보면 감독(매니저)의 이름은 킴(Kim)이다.

지난해 시드니올림픽의 김응룡 삼성 감독이나 올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두산의 김인식 감독,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제패한 김재박 현대 감독 모두 '매니저 킴'아닌가. 그러니 한국야구 최고 감독은 역시 그 사람,'한 사람의 김감독'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언급한 세사람의 김감독과 이번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진짜 김감독' 김정택 감독(48.상무)은 다르다. 달라도 아주 판이하다. 세명의 프로감독은 현역 시절 화려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현재는 나란히 국내 최고의 프로팀을 조련하고 있다. 한마디로 야구에 관한 한 국내 최고수들이다.

반면 김정택 감독은 철저히 무명이다. 현역 시절 화려한 경력도 없다. 국가대표는커녕 실업 선발도 하지 못했다. 지휘관으로서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표 코치만 11년을 지냈고 감독은 처음이다. '무명 용사(그는 군부대 상무의 감독이다)' 김감독이 세계 야구 강호들과 국가의 명예를 걸고 자웅을 겨루는 야구월드컵의 사령탑을 맡은 것은 다소 의외다. 참가선수 거의 모두(24명 가운데 20명)가 프로 출신이고 한국 야구의 위상이 걸린 대회니 만큼 프로 감독이 사령탑을 맡는 것이 당연했지만 프로 감독 가운데 '내가 하겠다'고 나서는 감독이 없었다. 모두가 포스트시즌과 마무리 훈련을 핑계대면서 감독 맡기를 꺼렸다. 그래서 결국 아마추어 가운데 국제 경험이 많은 김정택 감독의 몫이 됐다.

그러다 보니 잡음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선수 개인의 특성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개성 강한 프로 선수들을 장악하는 보스 기질이 없다", "프로야구 선수들을 아마추어처럼 기용하니 선수들이 적응을 못한다"는 등 각종 비난이 김감독에게 쏟아졌다.

지적은 맞다. 김감독도 "선수들의 개성까지는 잘 모른다. 미국전에 두산의 이혜천을 선발로 내세운 것은 내 실수였다. 이혜천이라는 선수를 몰랐다. 그의 구위만 믿고 기용했다가 결국 경기를 망치고 말았다. 그가 선발감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며 선수 성향 파악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선수들은 잘 모르지만 국제대회 노하우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시드니올림픽을 보면서 나름대로 보고 느낀 점도 있다. 국제대회에서는 프로식의 선수 기용은 바람직하지 않다. 매 경기가 월드시리즈 7차전처럼 마지막 승부다"며 자신의 야구관을 피력했다.

한국야구는 분명히 그에게 태극 마크를 달아주고 사령탑을 맡겼다. 그래놓고 "능력이 모자란다"고 비난하는 것은 '나는 책임이 없다. 나만 살겠다'는 소인배 짓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능력만 따졌다면 프로야구 세명의 김감독 중 누군가를 감독으로 선발했어야 했다.지금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김감독을 믿고 힘을 실어주는 게 올바른 일이다.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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