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온 플럭스' 애니 감독 피터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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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세계적인 슈퍼모델 신디 크로퍼드가 다이어트 코크를 앞에 두고 불만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곁에 있던 남자가 "뭐 안좋은 일 있어□" 하고 묻는다. "당신은 죽어도 모를걸." 신디의 퉁명스런 대답이다. 별안간 그녀가 애니메이션 속 여전사로 변신해 일대 활극을 펼치다 끝내 다이어트 펩시를 손에 쥔다. 1990년대 중반에 유명했던 펩시콜라 CF다.

이 CF의 별명은 '신디 플럭스'다. 이쯤 되면 미국에 거주하는 애니메이션 감독 피터 정(40)의 '이온 플럭스(Aeon Flux)'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터다. 96년 MTV에서 방영되면서 그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부각시킨, 일곱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이다. 여성 테러리스트인 이온이 가상의 세계에서 겪는 모험을 기묘한 설정과 분위기로(주인공이 갑자기 작품 초반에 죽어버리는 식의) 묘사한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비디오로 출시돼 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다.

14일 막을 내리는 제3회 부천 국제대학애니메이션 페스티벌(PISAF)의 본선 심사위원으로 내한한 그를 지난주 만났다. 12일에는 그의 작품을 추려 특별상영전을 열었고 관객과 대화도 나눴다. 국내에서 상영전을 갖는 것은 처음이다. 출세작 '이온 플럭스'를 비롯해 TV 시리즈, 나이키.AT&T.리바이스.펩시콜라 등 TV CF 모음이 소개됐다.

-'이온 플럭스' 이후 신작이 궁금하다.

"장편과 단편을 하나씩 진행 중이다. 단편은 워너 브러더스에서 투자하는 '애니매트릭스'다. 시작한 지 두달 됐다.'매트릭스'는 2,3편을 제작 중인데 내 작품은 세 편의 배경과 설정을 바탕으로 전혀 새로운 내용이 될 것이다."

-유명 기업의 CF를 많이 만들었는데 영화와 CF 중 선호하는 쪽은.

"최근 몇년 간 광고만 주로 만들었다. CF는 광고주의 주문대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내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이제는 내 작품을 해야지 하는 참이다."

-한국의 감독 지망생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

"대학생들의 신선함이 어떨지 기대가 된다.'좋은 감독이 되려면 이렇게 하면 된다'는 공식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다. 공식은 없다. 있다면 '자기 길을 찾아라' 정도일까. 미야자키 하야오 같은 명감독 역시 그런 자문과 탐구의 과정이 만든 것이다."

-디즈니사에서 잠시 일했는데 작품을 보면 어딘지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 미국에 비해 일본 애니메이션이 좀더 영화답다. 디즈니 캐릭터들은 무척 생동감이 있긴 하지만 작품이라기보다는 오락물에 가깝다. 나는 감독의 개성과 스타일이 살아 있는 쪽에 더 매력을 느낀다. 미야자키의 '천공의 성 라퓨타''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나 린 타로의 '메트로폴리스'는 내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준다."

-몇년 전 한국에서 '꼬마대장 망치' 스토리 보드 작업을 했는데 한국 애니메이션의 장.단점을 든다면.

"'망치'는 파일럿 필름을 공동제작했었다. 한국 애니메이터들은 손이 빠르다. 미국의 경우 분업이 철저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여러 가지를 다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면 한국 애니메이터들은 팔방미인이다. 비용과 시간이 절약되는 장점이 있지만 질은 떨어질 수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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