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운드 농산물 개방 거센 압력] 비상걸린 국내 농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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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WTO 각료회의에서 농산물 수출국의 개방 압력이 예상보다 거세자 각료 선언문 초안의 자구를 수정하는 정도로 예상한 농림부가 적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정부는 이번에 한국의 쌀시장 추가 개방 문제가 직접 거론되지 않겠지만 대세가 개방을 확대하는 쪽으로 기울 것으로 보고 2004년 쌀시장 추가 개방 협상 시한 이전에 쌀농사 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움직임이다.

◇ '남아도는 쌀' 꼬투리 잡혀=뉴질랜드 등 식량 수출국은 "한국에서 쌀이 남아도는데 식량 안보를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쌀뿐 아니라 전체 곡물의 자급률(28%)로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쌀만 놓고 보면 논리가 궁색해졌다. 9백89만섬인 쌀 재고가 올해 풍작으로 내년에는 1천3백70만섬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산지 쌀값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생산량의 40%인 1천5백25만섬을 사들여 시장에 내놓지 않을 방침이지만 나머지 60%에 대해선 시장기능에 맡길 수밖에 없다.

농림부는 WTO 협정상 수매가를 계속 올릴 수 없는 상황을 감안, 쌀 재배 농가에 가격 하락에 따른 소득 손실을 일정 부분 보전하는 논농업 직불제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당 25만~35만원인 직불제 보조금으로는 농가 소득을 보전할 수 없고 시장 개방에 대한 근본적인 방어대책도 될 수 없어 고심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것은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이후 농업의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외 가격차를 줄이고 경쟁력을 높여야 했는데 정치 논리에 밀려 오히려 거꾸로 갔기 때문이다.

추곡 수매가는 94, 95년 동결됐다가 그 뒤 4~7%씩 꾸준히 인상돼 왔다. 이 때문에 생산비 증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시장가격 지지로 전체 수입에서 생산비를 뺀 순수익률이 93년 35.9%에서 지난해 48.3%로 높아졌다. UR협상 당시 3~4배였던 국내외 가격차는 현재 6배 정도로 더 벌어졌다.

따라서 2004년 쌀 개방 재협상에 앞서 쌀의 품질을 높이는 대신 생산량을 줄이는 쪽으로 정책을 선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농림부 관계자는 "우리 농민도 이제 양 위주에서 품질 위주로 쌀 농사를 전환해야 한다"며 "정부도 중장기적으로 선진국에서 농민의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실시하는 소득 안정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국의 WTO 가입도 농업에는 악재=중국의 WTO 가입으로 ▶중국산 농산물의 수입 증가▶농산물 국제가격 상승▶해외시장에서의 경쟁 심화 등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국은 이미 92년부터 중국에 WTO 회원국과 같은 최혜국 대우를 하고 있어 중국 농산물 수입이 갑자기 급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농축산물 수입이 지난해 14억달러나 됐고 이 부문의 무역적자가 이미 12억8천만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중국산 쌀 수입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미 한국과 가까운 동북 3성 및 만주 지역에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자포니카 품종을 대량 재배하고 있다. 이 지역의 쌀은 세계시장 가격보다 18~46% 낮아 가격경쟁력까지 갖췄다.

농촌경제연구원 임정빈 연구위원은 "선진국에 비해 단순한 농산물 관세 체계를 정비하고 검역 및 식품검사 제도를 강화해 중국산 농산물 수입 급증으로 인한 국내 농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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