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 퇴진 결단 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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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당 지도부 간담회에서는 당 쇄신 건의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이날 최고위원들이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쇄신'과 '결단'이었다. 최고위원들은 재.보선 참패로 드러난 민심 이반을 가감없이 金대통령에게 전했다. 金대통령은 심각한 표정으로 경청했으며, 8일 회답을 주겠다고 했다.

다음은 발언록.

▶金대통령=당이 처한 상황에 대해 기탄없이 의견을 말해달라.

▶한화갑=재.보선 패배 이후 당내에서 촉발된 당의 상황과 민심 여론은 보도된대로다. 이번 일을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민이 우리를 과거처럼 지지하지 않는 점이 야속하고 섭섭한 면도 있지만 국민의 결정은 최종적이어서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쇄신 문제는 당뿐 아니라 국민 다수가 바라고 있다. 인사 쇄신과 제도적 쇄신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누군가가 이런 사태에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 집권당으로서 국민에게 정치적 도리를 해야 한다. 어떤 형태가 됐든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 당내 여론을 수렴해 대통령이 쇄신의 방향으로 결단해 달라.

▶김중권=10.25 재.보선에서 민심 이반이 극심한 단계에 왔다. 원인에 따라 처방이 나오고 집행돼야 한다. 수습 과정이 분란으로만 비춰져 안타깝다. 당내 상황을 조기에 수습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국정 쇄신과 인사 쇄신이 필요하다. 민심 수습을 위해 단호한 쇄신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여론에 밀려서가 아니라 스스로 필요한 조치를 할 때가 왔다. 인사 쇄신은 한두 사람을 공격하는 모습이 적절하지도 않고 특정인을 물러나라고 한 것도 적절치 않지만 이미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정치적 결단을 미룰 수 없는 상황이다.

▶박상천=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최고위원 회의를 의결기구화해야 한다. 최고위원 회의 중심으로 당이 돌아갈 때 책임도 진다. 내년에 최고위원 경선과 지자체 선거를 치르는데 경선을 끝내고 패배한 쪽에서 당권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단결에 문제가 생기고 이탈 가능성이 있다. 여러 세력이 공조 가능한 체제가 필요하다. 인적 쇄신은 광범위하게 하고 시스템 쇄신을 병행해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도부 사퇴로 선출직 최고위원은 이미 신분을 잃었다.

▶정동영=4년 전 민심의 기대와 희망 속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해 대통령 지지도가 90%를 넘었다. 이제 국민의 시선이 차갑게 변했고 그게 재.보선 결과로 나타났다. 돌아선 국민의 시선과 마음을 되돌리려면 큰 방향은 인사 쇄신이다. 결단 없이 민심은 안 돌아온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을 수용해야 한다. 특정인에 대해 나가라고 하는 것은 야당과 일부가 주장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보고 들은 바가 있어서다. 대통령이 이룬 업적이 국민에게 도달하지 않는 것은 빛을 가리는 차단막이 있어서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앞으로 못 나간다. 당사자 스스로의 결단이 최선이지만 안되면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대통령 뒤에 숨어 있으면 책임이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그동안 대통령은 잘 하는데 측근들이 보좌를 못했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대통령이 인사 운영을 잘못한다는 여론이 늘고 있다. 읍참마속이 필요하다.

▶정대철=당.정.청을 개혁해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보스정치에서 탈피해 공천도 상향식으로 하고 예비선거를 도입해야 한다. 경제를 시장원리에 맡겼듯이 당원과 국민에게 맡겨 민주주의를 완성한 정부가 돼야 한다.

▶신낙균=인적 쇄신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개혁의 방향은 옳으나 국민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김기재=현 상태를 방치하면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고 지방선거가 잘못되면 대선이 어렵다. 원외 지구당 위원장과 당직자들의 사기가 저하돼 있다.이래서는 임기를 훌륭하게 마무리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사람을 바꿔 내세우는 결의로서 국민의 뜻에 화답하고 변화 욕구에 부응해야 한다.전당대회는 별도로 당내 기구를 구성해 검토해야 한다.최고위원들은 사퇴 의사를 표시한 이상 당무회의에서 재선출 형식으로 슬그머니 복귀하는 모양은 좋지 않다.

▶김근태=정치적 부담이 대통령에게 집중되고 있다.개혁을 위해서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힘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정책 결정과 선택의 시기를 놓쳐 민심 이반이 심각하다.자민련과의 공조가 붕괴됐을 때 다시 시작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걸 놓쳐 엄중한 결과가 빚어졌다.국민의 실망감이 심각하다.쇄신 없이는 단합도 없다.지금 쇄신을 해야 통치 기반을 강화해 개혁을 추스르고 레임덕을 막는다.간곡한 소원이니 깊이 생각해 달라.인적 쇄신이 중요하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한다. 개인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군사 독재와 싸울 때처럼 비장한 마음으로 결단해야 한다. 스스로 결단을 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당이 변하는 모습을 느끼게 해달라. 인적 쇄신에 뒤이은 국정 쇄신은 대통령이 시간을 갖고 추진해 달라.

▶노무현=그동안 특정인 처리에 반대하고 제도 개혁을 통한 근본 쇄신을 주장했는데 민심이나 당내 상황은 나와 같은 의견이 소수다. 민심의 화살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재.보선 패배를 부른 민심 이반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경제 어려움과 국정 성과 부족에 있다. 앞으로 과도기적 운영 기간에도 당은 더 이상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고 책임있고 자율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내가 실세 대표를 주장했던 것도 이런 뜻이다. 그동안 당은 정책.민생 부문에 큰 공백이 있었다. 일상 당무와 당 쇄신 및 전당대회를 위한 쇄신 기구를 별도로 운영해야 한다. 대통령의 당적 이탈 건의가 일부 있는데 과거에 대통령의 당적 이탈이 민심을 얻지 못하고 당정이 함께 표류한 경험이 있다. 신중해야 한다. 정권 말기 증후군이 여러 분야에서 깊게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에서 정부 기강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잘 안되고 있다. 당 내분과 대통령을 겨냥한 공격 현상이 심각하다. 이에 청와대가 중심을 못잡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큰 문제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대통령 특단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인제=인적 쇄신과 당.정.청 개편에 대해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달라.개편시기와 대상.범위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관한 부분이니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특정인을 거론하는 것은 야당.언론은 가능하다.하지만 당내에서 그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그러나 이 또한 기정사실이 됐다.심사숙고해 가능한 조치를 취해 달라.당사자들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경제에서 더 큰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관료주의와 명분 중심의 경제팀이 아닌 현 경제상황에 전투적으로 대응할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강력한 경제팀을 구성해야 한다.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이 임기를 못 채우고 물러나는 데 자괴감을 느낀다.3일 최고위원 오찬 간담회는 그 전에 최고위원을 사퇴했기 때문에 불참 의사를 밝혔으나 이것이 대통령께 부담이 됐다면 송구스럽다. 선출직 최고위원 사퇴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미 최고위원회는 정치적 의미를 잃었다. 과도체제를 출범시켜야 한다.

▶김원기=중진들을 만나 의견을 들었다. 민심 이반을 되돌리기 위해선 대통령의 결단으로 감동을 주지 않으면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의표를 찌르는 조치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를 소생시켜야 한다. 정치 개혁은 국회가 위상에 걸맞은 실질적 역할을 해서 국회 중심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

▶金대통령=우리 경제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이 있다. 이번 재.보선 실패도 극복할 수 있다. 내 자신이 스스로 기대감을 갖고 최고위원 제도를 도입했으나 솔직히 미흡한 점이 있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총재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책임을 어떻게 질지 고민하고 있다. 여러분의 얘기를 심사숙고하겠다. 내일 당무회의에서 모든 것을 분명히 결정해 밝히겠다. 그 결과에 대해 성원을 부탁한다. 서로 동지로 아끼고 선의의 경쟁을 해 정권 재창출이 이뤄지도록 노력해 달라.

강민석.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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