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자릿수 환율 시대' 현실화 되면…] '엔고' 극복한 일본의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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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미 달러당 79엔이라는 엄청난 엔고를 겪었던 일본은 이제 웬만한 환율 변동에는 끄덕 않는 '엔고 대응형' 체질로 변신해 있다.

기업마다 자원의 낭비 요인을 철저히 제거함과 동시에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전 산업을 하이테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먼저 해외생산 비율을 대폭 높였다. 디지털 음향업체인 파이오니어가 10년 전 20%에 불과하던 해외생산 비율을 70%로 끌어올린 것을 비롯, 대부분의 기업이 환율변동에 대비해 해외 생산기지를 활용하고 있다.

일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일 제조업체의 해외생산 비율은 95년 7%에서 현재는 20%로 껑충 뛰어올랐다.

무역의 구조변화도 눈에 띈다. 달러 의존도를 크게 줄여 엔고에 의한 충격을 완화시켰다.

일 재무성의 무역통계에 따르면 2000년 상반기 수출결제에 사용된 화폐기준은 ▶달러 52.4%▶엔화 36.1%▶유로 6.1%였지만 올 상반기는▶달러 46.8%▶엔 40.1%▶유로 9.4%로 바뀌었다.

기업들의 엔고 전략도 다양하다.

후지쓰(富士通)와 히타치(日立)는 아예 그룹 전체의 수출액과 수입액을 같게 해 엔화 환율이 변동해도 큰 환차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히타치는 또 해외 현지법인이 달러로 올린 매출을 엔으로 바꾸지 않고 달러인 채로 가져와 부품 조달자금에 충당하는 등 엔고의 충격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엔고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고 일정기간 뒤 엔을 살 권리를 미리 사두는 '옵션거래'도 활발히 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옵션거래액이 사상 최고인 5000억달러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 오쿠다 히로시(奧田碩) 도요타자동차 회장 겸 게이단렌(經團連)회장은 22일 "현 환율은 일본 기업들이 아직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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