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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해외공관 주중대사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 외교의 되풀이되는 실수로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그동안 꽁치 외교, 탄도탄요격미사일 제한협정(ABM) 문안 파동, 탈북자 북송 파동 등을 겪으면서도 한국 외교에 애정을 갖고 있던 국민이 우리 외교가 문서 수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수준임을 확인하고는 실망과 분노를 넘어 허탈감에 빠질 지경이다.

한국 외교는 그동안 정상 외교와 유엔총회 의장 탄생 등 남 보기에 그럴 듯한 외화내빈(外華內貧)성 성과에 도취돼 재외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를 등한시해 왔다.

외교통상부 스스로 인정하고 있듯 재외 공관의 영사 업무에 대한 교민들의 불만과 원성.고발이 제기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외교 당국자들은 이러한 민성(民聲)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이를 일방적 주장으로 폄하하거나 열악한 근무환경 탓으로 돌리고 투철한 공복 의식과 근무 기강 확립 등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우리의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으로 커지고 상품과 민간 부문의 교류가 급증하면서 재외 교민 및 유학생.관광객들과 연관된 각종 민원이 끊임없이 발생하는데도 관련 조직을 재편하거나 이들 업무의 비중을 재조정하지도 못했다. 인사에 있어서도 정무.통상 등의 업무만을 정통 코스로 평가하고 우대하는 바람에 유능한 외교관들이 영사 업무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져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외교부는 틈만 나면 영사 업무가 인적.물적으로 과도하다고 말하지만 골프장 교제와 외빈 접대에 치중하는 모습이 빈번하게 목격되는 게 현실이다.

중국 동포 비자 발급과 관련해 돈거래 소문이 끊이지 않고, 교민과 유학생들이 현지 영사관을 찾아도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불평의 소리가 쏟아지는 것이다. 이러니 "해외 '공관(空館)' '주중(酒中)'대사관"이라는 비아냥 팩스가 외교부 기자실에 날아들지 않는가.

외교부는 환경을 탓하기 전에 외교관들이 교민과 재외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 재외 국민 보호와 그들의 권익을 증진하는 일이 우리 외교의 중요한 목표임을 차제에 입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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