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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량의 월드워치] 전쟁의 끝이 안 보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시작된 지 한달이 가깝다. 그러나 눈에 띌 만한 전과는 아직 없다. 폭탄테러 발생 직후 하늘처럼 높았던 미국 국민의 전쟁 지지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 하락하고 있다. 미국 국내는 탄저병 확산과 추가 테러 발생에 대한 불안이 가득하다.

경제도 잔뜩 움츠린 상태다. 아프가니스탄에선 며칠 전 내린 폭우로 겨울이 시작됐다. 혹한(酷寒)이 몰아닥치기 전에 가시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전쟁은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그동안 미국은 주로 공습에 의존하면서 특수부대를 투입해 탈레반의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한편 북부동맹을 제한적으로 지원해왔다.하지만 탈레반은 상당한 수준의 전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내부 분열 조짐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미국을 위해 '대리전'을 맡은 북부동맹은 객관적 전력에서 탈레반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설혹 북부동맹이 탈레반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한다 해도 소수민족 중심인 북부동맹만으론 정권을 구성할 수 없다.

전쟁 목표도 흔들리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과 테러조직 알 카에다 타도는 뒤로 돌려지고 탈레반 정권 붕괴가 우선 목표가 됐다. 테러와 전쟁이 아니라 국가간 전쟁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아프간 사람들은 외적이 침입하면 내부 분쟁을 중단하고 힘을 합쳐 외적과 싸우는 전통이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반(反)테러동맹 유지도 어려워졌다. 민간인 사상자가 늘어나 이슬람권에서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고, 유럽에선 반전(反戰)시위가 잇따르고 있다.

미국 정계에선 지상군 투입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공습과 특수부대의 단기간 투입만으론 한계가 있으며 대규모 지상군 투입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국방부도 지상군 투입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당분간 공습과 특수작전을 계속할 방침이며, 지상전은 내년 봄부터나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일부에선 과거 소련의 예를 들어 지상군 투입에 반대다. 11만5천명 병력을 파견한 소련은 10년간 1만4천5백명의 전사자를 기록하고 철수하는 치욕을 경험했다.

요즘 아프가니스탄 상공엔 '성층권의 요새' B-52가 다시 등장했다. 재래식전쟁에서 B-52는 주로 융단폭격에 사용된다. 군사목표와 민간시설을 가리지 않고 '비(非)유도 폭탄'을 쏟아 붓는다. 베트남전과 걸프전 때도 위력을 과시했다.

미국 국방부는 전선의 탈레반 병력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전역이 융단폭격 대상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개별 목표 파괴에서 광범위한 지역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전략이 바뀐 것이다. 발전소가 파괴돼 전력 공급이 중단됐고, 댐이 무너지면서 민간인 주거지역이 수몰(水沒)위기에 처했다.

유엔은 1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원조를 당장 재개하지 않으면 올겨울 90만명의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식량 수송을 위해 공습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테러리즘과 싸우는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구호가 무색해져가고 있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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