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벽화 기법 닥종이에 되살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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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화가 정종미(47)씨는 닥섬유로 만든 닥종이를 즐겨 쓴다. 그냥 닥종이가 아니라 다듬이 위에서 도침(두들기기)을 해서 더 질겨진 닥종이를 그림 재료로 삼는다. 그가 한국 여성에게서 발견한 강인한 근성과 질긴 기질이 바로 닥종이와 포개지기 때문이다. 그런 종이 위에 숨결을 담는 화가의 노동 또한 조선 여성과 맥이 닿는다. 고구려 벽화에 쓰인 색과 기법을 찾아 공부하고 재료를 만들어 염색하는 고된 과정 속에서 정씨는 인내심과 포용력을 절로 길렀다. 그가 작품 제목을 '종이 부인'(사진)이라 한 내력이다.

24일부터 12월 3일까지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여는 개인전에 나온 작품은 작가의 말마따나 "한반도의 땅에 피고 진, 모든 여성들과의 만남이자 제례의식이다." 그의 '종이 부인' 연작을 보면 한국 역사 속에 살다 간 어머니와 딸들이 살아나온다.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종이옷으로 갈아입고, 고구려신화 속의 주몽 어머니'유화부인'이 등장한다. 조각보의 미감을 되살린 '보자기 부인', 발이 고운 모시에 콩즙을 올린 '모시 부인'이 오랜 세월을 뚫고 흘러내리는 한국 여성의 마음을 두루 감싸안고 있다. 02-733-5877.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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