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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기자의 의료현장 (26)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뇌 기저부 수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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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수소문 끝에 2009년 10월 초,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이규성 교수의 외래 진료실을 방문했다. 김씨를 진찰한 이 교수는 종양이 이미 뇌 속 여기저기 많이 퍼진 상태라 수술은 최대한 빨리 받는 게 좋다는 판단 하에 수술 날짜를 27일로 정했다.

종양 제거하면 5년 생존율 50%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이규성 교수가 뇌 기저부 종양 환자 김태경씨(가명) 수술 전날 수술 방법과 합병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수술 전날 이 교수는 김씨와 부인을 진료실로 불러 뇌 모형도를 보여주며 수술 과정을 설명했다.

“종양 주변에 동맥과 뇌신경이 몰려 있는 데다 뼈도 두꺼워져 있습니다. 수술은 빨라도 12시간 이상 진행될 겁니다. 수술 중에 뇌를 이쪽저쪽 당기면서 모래알만 한 종양만 있어도 제거해야 하기 때문에 뇌가 붓고 피멍이 들 수 있어요. 실제 수술 후 뇌부종과 혈종이 생겨 재수술 받을 확률이 5%이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6개월 정도는 눈동자 움직임이 불편할 겁니다.”(이 교수)

“수술 후 완치율은 얼마나 되나요?”(김씨)

“5년 후 생존율이 50% 정도예요. 하지만 수술을 안 받으면 종양이 점점 더 커지면서 머지않아 사망하게 됩니다.”(이 교수)

설명 도중에 울먹이는 김씨 부인에게 이 교수는 “저와 의료진이 최선을 다하겠으니 보호자도 결과가 좋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세요”라고 위로한다.

두개골 고정한 뒤 왼쪽 이마쪽으로 절개

화살표가 가리키는 흰색 덩어리가 이씨에게 발병했던 종양이다(위). 수술 후 종양이 제거된 걸 확인할 수 있다(아래).[세브란스병원 제공]

10월 27일 오전 7시50분, 김씨가 수술장으로 들어왔다. 동맥압·맥박·산소포화도·심전도·체온·소변량 등 전신 상태를 모니터링 하는 장치가 많다. 마취 후엔 두개골에 3개(뒷머리에 둘, 이마에 하나)의 핀을 박아 머리를 고정하는 작업도 진행됐다. 이 교수는 왼쪽 이마 쪽으로 접근해 종양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9시55분, 이 교수가 왼쪽 이마와 귀 앞쪽을 지름 20㎝ 정도의 커다란 물음표 모양으로 절개하면서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종양에 접근하기 위해 광대뼈 뒷부분 5㎝ 정도도 전기톱과 드릴로 뗐다.

“종양이 해면상 정맥동(뇌의 정맥 혈액이 모이는 큰 혈관) 안으로 자라나와 오늘은 수술 도중에 피가 많이 나올 거야.”(이 교수)

오후 1시 30분, 경막(뇌를 둘러싼 막)을 절개하고 뇌를 조금씩 젖히자 종양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다.

이 교수는 일단 종양 세포 일부를 떼 조직 검사실로 보낸 뒤 잠깐 동안 수술장 옆에 준비된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갔다. 이 교수 자리에는 김의현 전임의가 와서 지혈을 하면서 본격적인 종양 제거 수술 준비를 했다.

20분간 급한 점심 식사를 마친 이 교수가 수술장으로 복귀하자 본격적인 종양 제거 수술을 앞둔 의료진의 긴장감은 극에 달한다.

“포셉, 아비텐, 서지셀, 석션….” 이 교수는초음파 제거기로 종양이 침범한 뇌와 뇌 사이의 뼈를 제거하면서 의료진에게 수술기구와 지혈제, 혈액 흡입 등을 끊임없이 지시한다. 제거된 뼈는 인공 뼈로 대체됐다.

오후 6시, 드디어 종양 제거가 끝났다. 이후 작은 출혈 부위를 지혈하며 절개한 모든 조직을 봉합하자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다.

한 달 뒤 퇴원 … 올봄엔 직장으로 복귀

이씨는 수술 후 4일간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었는데 그는 이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라고 회상한다. 퇴원은 수술 받은 지 한 달이 지난 11월 27일에 했다.

하지만 그 후로 한 달간 왼쪽 눈을 못 떴고, 석 달 후까지 사물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 다행히 신경이 조금씩 회복돼 올봄부턴 직장에 복귀하는 등 정상적인 일상을 되찾았다.

황세희 의학전문기자·의사


뇌 기저부 수술은

까딱 잘못하면 치명적 결과 … 국내 전문의 손꼽을 정도

뇌 기저부(skull base)는 뇌에서 뇌간(숨골), 4개의 뇌동맥, 뇌 그리고 12개의 뇌신경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곳이다. 반구 모양인 대뇌의 바닥면에 해당하며, 아래쪽엔 뇌와 척수를 연결하는 뇌간이 위치한다. 이곳에 모인 혈관과 신경은 사소한 손상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조물주가 얼굴 중심부에 꼭꼭 묻어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뇌 깊숙한 곳에 있다 보니 이 부위가 병들면 치료를 위해 접근하기조차 힘들다는 사실이다. 신경외과 의사들도 ‘접근 금지 구역(Noman’s Land)’으로 부르며 수술하기를 꺼린다. 실제 국내에서도 수술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손꼽을 정도다. 국내에서 뇌 기저부 질환 수술이 시작된 것은 20년 남짓하다.

주변에 워낙 중요한 신경과 혈관이 많다 보니 방사선 치료를 하긴 힘들다. 방사선 치료는 종양세포뿐 아니라 어느 정도는 주변의 정상 조직도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감마나이프 시술도 종양 크기가 3㎝ 이상이면 할 수 없다. 뇌간과 시신경이 손상될 위험이 있는 것도 문제다. 수술은 평균 12~15시간 소요되며, 24시간이상 수술할 때도 있다.

수술 대상으로는 종양 제거수술이 가장 많은데 뼈와 뇌막, 아래에서 위로 올라온 뇌하수체 종양, 안구 깊숙한 곳에 생긴 혈관종, 부비동에서 시작해 뇌 속을 파고든 종양 등 다양하다. 종양 이외에 혈관 이상이나 기형을 수술로 교정하기도 한다.

힘든 수술이다 보니 수술 후 사망률도 10% 정도로 높다.

뇌 기저부 수술은 통상 신경외과 전문의를 취득한 후에도 5년 정도 뇌수술 수련을 거친 뒤에야 집도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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