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언론, 한·미 정상회담 평가 두 갈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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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문제에 대한 노무현.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놓고 미 언론이 엇갈린 시각을 보이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21일 "부시 대통령은 4년 전 북한과 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면서 동맹국들을 밀어붙였으나 이번에 칠레 산티아고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서는 북한과 이란에 대해 어떤 시한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변화된 모습을 지적했다.

이어 신문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에서 근무했던 대니얼 벤저민의 말을 인용해 "부시 대통령의 북한관은 노무현 대통령과 판이하게 다르지만 당분간은 더 이상 구사할 만한 강경책도 마땅하지 않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 이유는 "만일 북한과 군사충돌이 일어날 경우 이는 이라크 주둔 미군(13만명)을 감축해야 하는 요인이 된다고 국방부가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타임스는 부시 2기 행정부의 외교정책이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3인의 역학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며, '강경파인 체니 부통령이 북한에 대한 군사 공격은 아니지만 경제봉쇄와 김정일 정권 교체 공작을 추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CNN방송은 미.중 정상회담 보도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이 현재의 정치적 분위기를 이해하고 있으며 곧 6자회담에 복귀하는 데 동의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월스트리트 저널은 '왜 우리가 김정일을 믿어야 하느냐'는 제목의 사설에서 "북한을 더욱 고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최근 평양 공공 건물에 내걸린 김정일 초상화가 갑자기 사라졌으나 그 이유를 알 까닭이 없다며 이는 북한이 그만큼 고립됐고 외부 세계를 믿지 못하는 비밀국가라는 또 다른 증거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북한이 외부 세계를 믿지 못한다면 외부 세계도 북한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외신을 인용, ▶김정일 반대 낙서▶김정일 부인 고영희 사망▶고위층 숙청을 둘러싼 권력 암투 같은 북한 내부의 갈등과 저항이 한층 심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또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해리 로웬의 말을 인용해 "김정일의 목표는 외부에서 기름.식량을 얻어와 정권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널은 지금은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질문은 "김정일에게 구명 로프를 던져 2200만 북한 주민을 10년간 더 굶주리게 하고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 공갈에 떨게 만드는 것이 온당한 일이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김정일 정권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거나 자체 붕괴할 때까지 북한을 더욱 고립시키는 것이 유일한 합리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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