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2기 정부는 권력 암투중

중앙일보

입력

미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제 2기 행정부에서 치열한 권력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새'정보 법안'의 의회통과를 둘러싼 암투다.

정보법안은 중앙정보국(CIA)과 국방정보국(DIA) 등 15개 정보기관의 기능을 하나로 통합하고,각료급 책임자를 임명해 이를 총괄한다는 내용이다. 의회 9.11위원회의 권고사항이고 부시 대통령도 승인했다.

한데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은 지난 20일 이 법안을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막 재선에 성공한 막강한 대통령에 대해 여당이 대놓고 반발하는,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위해 막후 로비를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은 확산되고 있다.부시 대통령으로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셈이다.

◇럼즈펠드,왜 부시에게 대드나= 미국의 전체 정보예산은 400억 달러다.이중 약 80%를 국방부가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사용해 중앙정보국이나 국무부보다 양질의 정보를 확보할수 있었다.한데 정보법안이 통과되면 국방부는 꼼짝없이 인력과 예산을 돌려줘야 할 판이다. 이 때문에 럼즈펠드는 그동안 공개적으로 정보법안을 반대해왔다.

하지만 아무리 럼즈펠드가 막강해도 부시 대통령이 찬성한 이상 법안통과는 문제 없을 것이라는게 중론이었다.게다가 상원에선 법안이 만장일치로 이미 통과된 상황이었다. 한데 예상이 뒤집혔다.

럼즈펠드와 가까운 하원 군사위의 던컨 헌터 위원장(공화당)은 "이라크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국방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질수 없어 결국 우리 군인들에게 해가 된다"는 논리를 앞세워 법안 상정을 저지했다.공화당 의원들 상당수가 헌터 위원장 편에 서는 바람에 데니스 해스터드 하원의장(공화당)은 20일 "법안을 상정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화가 난 부시= 지난 19일 아시아 태평양 경제협력체(APEC)회의에 가면서 공군 1호기에서 직접 공화당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법안을 통과해달라고 로비했던 부시 대통령은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딕 체니 부통령도 의원들 사전 설득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했다.

부시 대통령은 21일 칠레에서 "돌아가면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면서 불편한 감정을 토로했다. 일부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부시대통령이 럼즈펠드 견제에 나서거나,혹은 경질할 것으로 관측한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듯 럼즈펠드 장관의 레리 디 리타 대변인은 이날 "럼즈펠드 장관은 부시 대통령의 목표를 지지한다"면서 법안 통과에 찬성하는 듯한 발표를 밝혔다.

◇각본설도 나돌아=부시 대통령이 당초 정보법안에 미온적이었기 때문에 이를 감지한 공화당원들이 사전 각본대로 움직인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공화당의 반대를 앞세워 정보법안의 상당부분을 수정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에대해 민주당은 "자기 당조차 설득하지 못한 대통령에게 책임이 있다"면서 "9.11위원회의 권고까지 무시하니 앞으로 추가 테러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모두 여권이 져야 한다"고 비난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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