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 전격 무장해제 착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영국 북아일랜드의 구교파 군사조직인 아일랜드 공화군(IRA)이 무장해제에 착수함에 따라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아일랜드 평화협정 이행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

영국의 북아일랜드 통치에 반대하는 구교파 단체가 스스로 무기를 버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신.구교 주민들간의 갈등구조와 뿌리 깊은 감정대립이 풀리지 않은 상태여서 북아일랜드 분쟁이 해결될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 무장해제의 배경=IRA는 23일 주요 언론사에 배포한 성명을 통해 "붕괴 위기에 빠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을 살리기 위해 전례 없는 무장해제 합의를 실행에 옮긴다"고 발표했다. 무장해제에 대한 감독권을 가진 캐나다 주도의 국제위원회는 "IRA가 총기류와 탄약, 폭발물 등 의미있는 양의 무기를 사용권 밖에 두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IRA의 무장해제는 1998년 영국과 아일랜드 정부가 극적으로 합의를 이끌어 낸 평화협정 실행의 최대 걸림돌이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버티 아헨 아일랜드 총리의 합의에 따라 북아일랜드에는 신교계인 얼스터 연합당과 구교계인 신페인당이 함께 참여하는 자치정부가 구성됐다.

논란거리였던 경찰 개혁문제도 순조롭게 합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IRA와 신교계 무장조직들은 몇차례의 시한연장조치에도 불구하고 무장해제 합의를 번번이 깨뜨렸다. 양 진영의 신뢰관계가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무장해제는 곧 항복'이란 강경파들의 논리가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트림블 자치정부 수반 등 신교계 각료 5명이 IRA의 약속위반을 비난하며 사임하는 바람에 영국 정부는 자치정부의 기능을 중단시켰다.

IRA의 무장해제 선언은 평화협정 전체가 파기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특히 지난달 동시테러 사건 이후 강화된 국제사회의 반테러 연대와 여론도 IRA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 불투명한 미래=98년 평화협정은 단계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신.구교 공동 자치정부를 구성하고 영국군 철수, 북아일랜드 영유권을 주장하는 아일랜드의 헌법조항 삭제 등 평화정착 단계를 거친 뒤 주민들의 자율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북아일랜드의 귀속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IRA의 무장해제 개시는 평화협정 이행의 전체 여정에서 초보적인 단계에 들어선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끝까지 이같은 약속이 지켜질지도 아직 불투명하다. 94년 IRA가 무장투쟁의 종결을 선언했다가 96년 다시 테러를 재개한 전례도 있다.

블레어 영국 총리는 "아직 여정을 끝내려면 먼 길을 가야 하지만 매우 의미있는 이정표를 지나온 것"이라고 낙관과 비관이 뒤섞인 북아일랜드의 앞날을 전망했다.

예영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