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관심 끄는 두 학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흥미있는 두명의 학자가 조용히 방한했다.

한국인이면서 중세 라틴 문학으로 유럽에 잘 알려진 이득수교수(이탈리아 시에나대학.63세)와 세계적으로 배포되고 있는 '인터-아시아 문화연구'의 편집인 천관싱교수(대만 국립 칭화대)가 그들이다.

세계적 석학의 내한 때처럼 국내에 떠들석하지는 않지만, 유럽 고전이나 문화연구 등 관련 학계에서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 국내대학서 첫강연 이득수 伊 시에나대 교수

젊은 시절 이탈리아로 건너가 중세 라틴문학의 거장이 된 이교수가 과거 한국을 찾은 적은 있으나, 대학 강연을 하기 위해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8일 서울대 서양고전학회(회장 김남두)의 강의에 이어 지난 토요일(20일) 서강대에서 열린 서양고전학회에서 '유럽통합의 중세적 기원'이라는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고, 효성 카톨릭대와 동아대 등에서도 강의할 예정이다.

이교수가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한국문학 알리기'를 통해서였다. "그리스.라틴문헌 번역작업을 통해 얻은 노하우를 활용, 수준높은 한국문학 번역본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독일 페퍼콘에서 한국문학총서를 발간하기로 결정, 여러 명의 시집을 번역출간했다.

최근에는 구상 시인의 시집을 출간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전한다. 지난해 구상시인이 노벨상 문학상에서 아깝게 탈락한 사실을 전한 그는 "한국문학이 노벨상을 받으려면 서구 지성인들에게 우리 문학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그의 발언에는 움베르토 에코 등 서구학계의 거장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등 유럽학계에서 차지하는 이교수의 중량감이 깔려있다.

1967년 이탈리아 국비장학생으로 유학길에 오른 그가 동양인 최초로 라틴문헌학 교수가 되자 '학문적 자존심'을 내세우며 반대여론이 높았다.

그러나 카톨릭 수도자들의 문헌을 통해 중세 상투어 의미 등 미개척분야를 열게되면서 이탈리아 학계도 그를 극진히 대접하기 시작했다. 국가종신 교수인 그가 현재 교수자격 심사위원 5명에 들 정도로 이탈리아 학계에선 거장으로 성장했다.

최근 그는 지금까지 열람 금지됐던 바티칸 교황청 비밀문서보관소의 한국 카톨릭 성인 1백3위의 기록을 특별허가를 받아 번역.연구작업을 하고 있다. 최근 마이크로 필름작업을 완결지은 그는 이를 디지탈화하여 CD-롬으로 제작할 예정이어서 한국사, 동서양 교류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양의 힘은 전통에서 나온다"고 단정한 이교수는 이탈리아로 귀국하면 '유럽개념의 신화와 현실'이라는 주제로 독일 7개대학 순회강연을 시작할 예정이다.

*** 연대 교환교수 천광싱 '인터 아시아…' 편집인

아시아 학자들의, 아시아 학자들에 의한 비판적 문화연구 잡지인 '인터사이아 문화연구(Inter-Asia Cultural Studies)' 편집인 천교수는 최근 연세대 교환교수로 방한해 국내의 문화연구자들과 접맥을 시도하고 있다.

1996년 미국에서 열린 아시아 학회에서 발간키로 한 이 학술잡지는 아시아 지역 약 25개국의 50여명의 편집위원이 참여해 만들고 있다.

세계적인 이론서 출판사 루트리지에서 2000년부터 간행해 전세계 아시아 연구기관에 배포되고 있다. 현재까지 총 6호가 출간됐으며,3호에서는 '한국의 IMF위기효과'라는 주제로 특집을 다룬 바 있다.

"서구인에 의한 아시아 문화의 대상화로 요약할 수 있는 기존의 문화연구와 달리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아시아의 문화를 새로운 창조틀에 묶어 주체화하는 것"이라 설명한 천교수는 창간호 특집 '아시아의 정체성을 묻는다'가 말해주듯 새로운 아시아의 정체성을 모색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소위 '아시아적 가치'가 정치지도자들이 만든 정치적 은어"라고 비판한 그는 "다양성 속에서 아시아의 정체성을 새롭게 구성하는 문화운동으로 그 지평을 넓히고자 한다"고 설명한다. 나아가 그는 "이런 움직임은 아시아 학자들의 자신의 관점에서 문제제기가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그 규정한다.

결국 그는 아시아 학자들의 상호이해와 네트워크의 확장으로 제도화된 틀 속에 묶어내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조한혜정교수(연세대.사회학).강명구교수(서울대.언론학).김소영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영화비평).김성례교수(서강대.인류학)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창작과 비평'(창작과비평사)'당대비평'(사민)'문화과학'(문화과학사) 등이 자매잡지로 논문을 공유키로 했다.

이같은 연대를 이슬람등 현재 포괄하지 못한 아시아 지역으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