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구' 이창훈 KBS 미니시리즈 '미나'로 컴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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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맹구'의 원조 이창훈(45)이 돌아온다. 브라운관을 떠난 지 햇수로 3년 만이다. 그러나 이번엔 책상 위에 올라가 몸을 배배 꼬며 "선상님, 질문 있사와요"라고 외치는 맹구가 아닌, 정통 드라마 연기자로서다.

KBS2 '순정'의 후속으로 다음달 5일부터 방영되는 월.화 미니 시리즈 '미나'가 그 무대. 그는 여기서 3류 가수들의 일정을 관리하는 연예 매니지먼트사의 '공부장'역을 맡았다. 어린이 드라마에 한 번 출연한 적은 있지만, 성인 드라마에는 첫 도전이다.

짙은 일자 눈썹과 자유자재로 모양이 바뀌는 입. 사람들은 그를 떠올릴 때 맹구의 이 코믹한 이미지를 연상한다. 실제의 그가 전형적인 미남형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어휴, 실은 저도 그게 고민이에요. 아직도 저를 맹구로만 보시니…."

1990년대 초 KBS '한바탕 웃음으로'의 '봉숭아 학당' 코너에서 개그맨 오재미와 명콤비로 웃음을 전해 주었던 밉지 않은 바보 맹구. 이는 그에게 명(明)과 암(暗)을 동시에 가져다 준 배역이었다. 맹구 덕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배우가 되었지만, 그로 인해 이미지가 고정돼버려 다른 배역을 맡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맹구 이전의 그는 연극만을 고집하는 배우였다. 그의 연기에 반한 KBS PD의 끈덕진 부탁만 아니었다면 그가 코미디 배우로 각인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딱 한 프로만, 그것도 잠시 출연하겠다"며 코믹 역할을 받아들인 게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맹구=이창훈'으로 굳어져 버렸다. 이제는 그가 심각한 말을 해도 사람들은 "뭔가 뒤에 반전의 코미디가 나오겠지…"하고 기대하기 일쑤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것이 긴 휴식이었다. 99년 초 어린이 드라마를 끝으로 그는 긴 '은둔'에 들어갔다.

"기다림의 세월이었습니다.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건 변신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저에게서 맹구의 그림자를 지워주길 바랐죠."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분신'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각종 프로에서 맹구는 늘 '개인기(技)'의 단골 소재가 됐고, KBS의 인기 프로 '개그 콘서트'에선 개그맨 심현섭이 10년 전 봉숭아 학당 시절의 그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시청자들이 맹구를 좋아하는 걸 어떡합니까. 그래서 아예 정통 연기자로 출사표를 던진 겁니다. 앞으로는 다양한 모습으로 시청자들을 찾아뵐 겁니다."

이미지를 씻어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은둔 기간은 그에게 한가지 개인적인 의미가 있었다. 암으로 투병하는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그가 직접 약초꾼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하루가 멀다하고 강원도 설악산에 가 상황버섯.느릅나무 껍질 등을 채취해 서울로 공수했다. 그 정성에 하늘도 감복했는지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어머니는 5년간 건강하게 생활하다 지난해 초 세상을 떠났다.

어느덧 연기생활 25년이 훌쩍 넘었다. 올해를 하나의 반환점으로 삼고 싶다는 이창훈. 그는 앞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한 다양한 배역을 연기해 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코미디 쪽은 당분간 쳐다보지도 않을 생각이라고 한다. 나중에는 악역 연기의 진수를 보이고 싶다는 야심도 살짝 내비친다.

이제 40대 중반. 연기자로서 변신을 꾀하기엔 녹록지 않은 나이다. 그가 힘겨운 변신 과정을 넘어 이 가을에 연기의 수확물을 풍성하게 건지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참, 미혼인 그가 좋은 여자도 함께 만났으면 좋겠다.

이상복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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